지난 12일 오전 8시53분. 가족 단톡방에 동영상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동영상을 누르자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아기의 울음소리가 이어폰에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둘째 조카의 탄생은 아직도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인천 미추홀구 아인병원에서 의료진이 신생아들을 보살피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주변 지인들이 떠올랐습니다. 아빠가 된 선배는 아이 사진을 보여줬고, 친구들은 하나둘 청첩장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갓 취업한 20대 후반 남성에겐 결혼은 아직 이르다고 할 수 있지만, 주변 상황이 이러하니 요즘 저에겐 ‘결혼’과 ‘출산’이라는 단어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이런 와중에 눈길을 끌은 기사가 있었습니다. 17개월째 전쟁 중인 이스라엘의 출산율이 올랐다는 보도였습니다.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지난해 출생아는 약 18만1000명으로, 2023년 17만 2500명보다 4.9% 늘었습니다. 특히 출생아는 지난해 8~10월에 집중됐는데, 임신 기간을 감안하면 출산한 대부분의 여성이 전쟁 발발 직후인 2023년 11월에서 2024년 1월 사이 임신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전쟁통에도 출산율이 늘어난 나라.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는 한국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입니다. 이스라엘의 출산율이 높은 이유는 정부의 적극적인 출산 장려 정책도 있지만, ‘가족’을 최우선으로 두는 문화가 한몫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도록 퇴근 이후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여 가정에서 그 시간을 보내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합니다. 정책과 문화가 어우러진 덕에 이스라엘에서 다산은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사뭇 다릅니다. 지난해 11월 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일·가정 양립 지원 제도의 도입, 인식 및 활용 격차 분석' 보고서를 보면 남녀 노동자의 60% 정도만이 육아휴직을 활용 가능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혼을 앞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걱정이 많습니다. 내가 아이를 낳아도 아이가 과연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무한경쟁에 시달리고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현 상황을, 내 아이도 겪게 만들고 싶진 않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전쟁 발발 후 임신한 한 여성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어두운 시기에 아기를 가진 것이 우리에게 약간의 빛을 주고 정신을 차리게 해줬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돈보다 중요한 것은 ‘희망’입니다. 단순 지원금만으로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아이를 낳아도 괜찮겠다는 인식이 생기도록 사회가 바뀌어야 합니다.
너무 뻔한, 귀가 닳도록 들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답을 알고 있음에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위기입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전년 대비 3.6% 증가했습니다. 출산과 양육이 걱정거리가 아니라 행복이 될 수 있도록 지금을 기회 삼아 모두가 변해야 합니다.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