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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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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북리뷰)은행은 괴물일까 인간일까

정대영 <동전에는 옆면도 있다 : 정대영의 금융 바로 보기>

2013-12-08 13:59

조회수 : 2,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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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하늬기자]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는 대공황 시기에 은행의 빚을 갚지 못해 농토를 빼앗기고 서부로 이주하는 소작농의 처절한 삶을 그렸다. 땅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농부와 집을 철거하러 트랙터를 몰고 온 기사와의 짧은 대화에서 은행은 '괴물'로 표현된다.
 
"이건 우리 땅입니다. 우리가 개간하고...여기서 죽었어요. 숫자가 적힌 서류로 주인이 되는게 아닙니다"
 
"미안합니다. 이건 은행이라는 괴물이 하는 짓이예요"
 
"그렇지만 은행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거잖아요"
 
"아니 틀렸어. 은행은 사람하고 달라요. 사람보다 더 강해요. 괴물이라고요"
 
은행이나 금융에 대한 인식은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편이 아니다. 고려시대 사찰과 귀족의 사채부터 조선시대 지방 토호의 장리 쌀, 탐관오리의 환곡 등 다양했다.
 
지금도 이러한 전통 때문일지는 몰라도 상당수 사람들이 사채업자나 대부업체로부터 높은 이자와 불법 추심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금융 피해가 커지면서 나쁜 은행, 나쁜 금융의 대표적인 형태로 약탈적 금융, 약탈적 대출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뿐만 아니다. 한국에서는 신설기업, 영세기업, 저신용자 등 자금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에게 자금을 융통해주는 금융의 기본기능마저 취약하다. 그런데도 금융기관은 많은 수익을 내고 고배당을 했다. 직원들에게는 많은 급여를 주고 근무 환경도 상대적으로 좋다. 자연스럽게 금융과 금융인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좋지않다.
 
그렇다면 정치혁명이나 산업혁명처럼 금융혁명이 일어나면 어떨까?
 
프랑스대혁명, 러시아혁명, 4.19혁명 처럼 시민의 힘으로 정치체제나 지배계급을 바꿨듯이 금융혁명을 통해 금융을 완벽한 상태로 바꿔보는 것. 하지만 수많은 산업혁명과 정치혁명은 일어지만 금융혁명은 거의 없었다. 기득권자의 저항이 크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기득권층, 즉 이미 성공한 사람은 새로운 경쟁자가 쉽게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금융이 발달하지 않을수록 이익이다. 따라서 금융의 발전을 원치 않는다고. 결국 서민들은 은행이라는 괴물과 맞서 싸우지 못하고 처절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동전에는 옆면도 있다>는 비관적이지 않다. 방법이 있단다.
 
금융혁명이 불가능할지 몰라도 '좋은 은행, 좋은 금융'이 '나쁜 은행, 나쁜 금융'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아지게 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창업자, 영세사업자. 저신용자 등의 금융이용 기회를 확대하자는 건데 '관계금융'을 통해서 말이다.
 
창업자나 영세사업자 중에서 대출 상환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골라낼 수 있는 노하우를 지닌 금융전문가나 은행이 늘면 금융기회가 확대된다.
 
신용평가는 그들과의 오랜 접촉과 거래, 관찰 등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지속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대출 등 금융거래가 이루어지면 '좋은 은행'이 된다. 관계금융은 은행의 관리 비용이 증가하고, 기업의 협상력 약화 가능성 등의 문제는 있지만 창업자나 영세사업자 등이 담보 없이 적절한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
 
이런 관계금융의 좋은 사례는 독일 신용협동조합은행이다. 이 은행은 1200개 정도의 단위신협과 2개의 신협중앙회로 구성돼 있고 모든 단위신협과 중앙회는 각각 독립된 은행이다.
 
대출은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이 반반인데 대출의 많은 부분이 지역 상공업자와 농민, 자영업자 등에 대한 관계금융 형태로 이뤄진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1930년대 이후 파산한 사례가 없어 뛰어난 안전성을 인정받고,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스웨덴 은행 '한델스방켄'도 지점을 통해 고객과 긴밀한 친밀관계를 유지한다. 한델스방켄은 '지점이 곧 은행이다'는 철학으로 마을 곳곳의 지점을 통해 고객과 유대감을 형성하고, 고객과 직원의 관계를 통한다.
 
대출자를 평가할 수 있는 '담보'등 객관적인 자료는 없지만 직원의 오랜 관찰을 통해 그가 성실하다고 판단되면 대출을 해주는 식이다. 객관적 지표를 가진 다른 사람보다 더 잘 갚을 가능성도 크다는 것.
 
한국에서는 어떨까. 독일의 협동조합은행과 비슷한 성격의 금융기관으로 신협, 새마을금고, 농 수협의 단위조합이 있다. 하지만 이들 기관은 관계금융 면에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신협과 새마을금고 등도 담보대출 중심이고, 신용대출은 아주 소액이나 직장 등이 확실한 사람에게만 해주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생소하고 어쩌면 비용까지 많이 들 수 있는 '관계금융'이 이뤄져야 조금이라도 나쁜 은행보다 좋은 은행이 많아질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동전에는 옆면도 있다>는 관계가 없는 은행의 비인간성. 은행이 괴물의 역할을 벗도록 국민이 금융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갖자는 것이다.
 
저신용자와 신규 사업자의 금융 이용 기회 확대, 금융 부문에서의 더 많은 일자리 창출, 금융기관의 국제경쟁력 확보 등과 같은 '좋은 은행, 좋은 금융'의 역할이 커지길 희망하는 따뜻한 금융책이다. 하지만 동전에서 앞면과 뒷면을 빼면 남는 것은 좁디 좁은 옆면뿐이라는 것이 씁쓸한 이유는 뭘까.
 
  • 김하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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