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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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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입니다.
(시론)4차 산업혁명 앞에서의 고민

2016-10-2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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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올 초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이야기들이 퍼져 나온다. 1차 산업혁명과 2차 산업혁명이 증기와 전기 동력을 기반으로, 3차 산업혁명이 인터넷 정보통신(IT) 기술을 기반으로 했다면, 4차 산업혁명은 IT에 생명과학과 물리학 등이 결합해 진행된다. 4차 혁명은 기존 3차까지의 기술들을 모두 융합해 새로운 양태를 만들어낸다. 스스로 진화하는 인공지능(AI)이 이세돌과의 대결로 명성을 떨치더니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자리를 잡았다.
 
4차 산업혁명론이 등장하면서 경제 시스템은 온통 숫자로 표시된다. 자본주의 4.0, 정부 3.0에 이어 6차 산업화 등이 그렇다.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모르고서는 시스템을 이해할 수 없다. 그중에서 6차 산업화는 일본의 이마무라 나라오미(今村奈良臣) 교수가 제창한 이래 우리나라의 농촌과 어촌을 유행처럼 휩쓸고 있다. 6차 산업화론도 4차 산업혁명처럼 종전의 1차 산업(농업·어업)과 2차 산업(농수산물 가공), 그리고 3차 산업(유통·관광)을 결합(1차×2차×3차)시켜 '6차'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경제주체들이 종전의 산업들을 유기적으로 융합시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6차 산업화의 핵심이다.
 
농사를 짓거나 고기를 잡아서 돈을 벌기는 힘들다. '잘해야 본전'이기 때문에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농산물이나 수산물을 직접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이를 생태 관광객들에게 판매하거나 외부로 유통시켜 소득을 올린다. 생태관광지로 각광받는 농촌이나 어촌에서는 집을 민박용으로 제공해 소득활동을 영위할 수 있다. 일본의 오이타 등 유명 농어촌 생태관광지에서는 1차 산업(농업·어업)으로 총소득의 20%를 올리고 나머지 80%는 2차 내지 3차 산업으로 거둬들인다. 영화관에서 영화만 상영해서는 본전치기고, 상영 전에 광고나 군것질거리를 팔아서 부가소득을 올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런 경험들이 6차 산업화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혁신들이 경제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패러다임 상호 간 관계 모색이 필요하게 됐다. 6차 산업화도 농촌이나 어촌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기존 기술이나 산업들의 융합을 특징으로 삼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양상을 보인다. 4차 산업혁명이나 6차 산업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혁신의 물결 위에서 가치를 창조하기에 바쁘지만, 주변에 머무는 사람들은 개념의 혼란에 빠져 언제 어디로 어떻게 접근해야 '제4의 물결'에 편승할 것인지 망설인다. 아직 5차 산업이라는 개념이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5차 산업이 등장하고 여기에 5차 산업혁명이 부가된다면, '5차'라는 수식어는 동일하지만, 산업화와 혁명은 전혀 다른 내용이기 때문에 개념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도 좋고 6차 산업화도 좋은데, 우리나라의 사회경제 시스템과 각종 제도가 이를 어떻게 얼마나 수용할 것인가도 문제다. 예컨대 농·어촌에서 6차 산업화의 일환으로 민박이 실시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도 민박들은 아침식사를 제공하지 못했다. 민박이 식사 제공을 겸하는 데 대해 주변 요식업소들이 반발했고, 관계 당국도 위생과 안전 문제 때문에 망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태관광객들은 아침식사를 위해 다시 먼 길을 나서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부분의 민박에서는 여인숙처럼 전날 다른 투숙객들이 덮었던 이불을 그대로 내놓음으로써 관광객들을 찝찝하게 만들었다. 이불 홑청을 세탁해 갈아 끼워주는 서비스 자세가 부족했다.

사회경제 시스템이 원활하지 못해 6차 산업화가 정착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작은 사례를 들었지만, 4차 산업혁명은 이보다 훨씬 심각한 장애들이 도사리고 있다. 예컨대 인공지능이 제1의 자연인이나 제2의 법인에 이어 제3의 전자인(가상인)으로서 독자적인 아이디(ID)를 획득하고 본인이나 대리인 또는 보조인으로 활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반려동물처럼 활용되는 서비스 로봇 등이 사고라도 낸다면 누가 책임을 어디까지 질 것인가, 후사가 없는 사람은 반려견에 재산을 상속하듯이 자신을 간병하고 임종을 지킬 인공지능 로봇에 재산을 증여할 수 있는가 등의 법률문제가 생겨난다.

이는 그렇게 먼 공상과학 소설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농장의 상치로봇(렉투스봇)은 상치가 아닌 잡초만을 제거한다. 이미 일부 법학자들은 인공지능을 장착하고 무인으로 주행하는 자동차의 제조물책임과 손해배상책임의 법률관계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규제들에 칸막이로 점철된 현행 법제와 행정으로는 4차 산업혁명에 대처할 수 없다. 북한처럼 고립경제나 폐쇄경제 체제를 고집하기 어렵다면, 생태관광에서 보듯이 원 포인트 서비스 등을 포함하여 규제 체계의 비상한 혁신과 전환이 요청된다.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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