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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시론)박근혜, 이승만·닉슨에게 배워라

2017-03-17 06:00

조회수 : 14,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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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마침내 파면되었다. 거짓말처럼 봄이 쏟아졌다. 그래도 그는 곧바로 청와대를 비우지 않았다. 절대 파면되지 않을 거라는 보고를 받았다 한다. 선고를 듣고도 전화해서 다시 확인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처 준비를 못했다고 한다. 집에는 TV도 가구도 없고, 보일러도 제대로 돌지 않아서라고 했다. 알고 보니 최순실이 장시호에게 제 맘대로 줘버린 탓이라고도 한다.
 
어떤 백성들은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자고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마음가짐이었다. 헌법재판관들이 지적한 것처럼, 그에겐 떠나는 날까지도 여전히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았다.”
 
결국 아무런 해명도 없이 나왔고, 아무런 반성 없이 웃으며 들어갔다. 하긴 장을 지지겠다던 사람도, 목숨을 내놓겠다던 사람도 아무 일 없었으니 그에게 더 무슨 일을 기대할까. 그래도 너무했다. 그는 여전히 딴 세상을 살고 있었다.
 
왕을 잃었다며 통곡하는 이들이 있었고, 사람도 아니라며 분노하는 이들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그는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저 머리를 조아리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절로 웃음이 나왔는지 모른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사실이 두렵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탄핵소추에 따른 대통령 파면은 처음이 아니다. 대한민국 7년(1925년) 3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대통령 심판위원회는 “국정을 방해하고 국헌을 부인하는 자를 하루라도 국가원수의 직에 두는 것은 대업진행을 기하기 어렵다. 국법의 신성을 보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순국 제현이 명복할 수 없는 바이고, 또 살아있는 충용들이 소망하는바 아니므로” 이승만을 면직시켰다. 박근혜는 그 이승만을 복권시키려 건국절과 국정교과서 파동을 일으켰다. 아버지 박정희도 비판했던 독재자 이승만이 그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였기 때문일까.
 
바로 그 이승만도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을 주문하는 측근들의 제의를 거부했고, “불의를 보고 일어나지 못하는 민족은 죽은 민족이다. 민중이 내가 그만둘 것을 원한다면 물러서면 된다”고 말했다. 스스로 행한 일을 ‘불의’로 규정하며 민중의 뜻을 받들어 거취를 분명히 한 것이다.
 
다 알다시피 당시엔 여론조사도 없고 인터넷도 없었다. 그래도 그는 국민에 대한 마지막 도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는 부모의 나쁜 점만 물려받아 도무지 그 고집을 꺾을 수 없고, “5천만이 시위해도 절대 안 물러날 것”이라던 사촌형부 김종필의 예측만이 맞아 떨어진 현실이 남았다. 아니 예측을 훨씬 뛰어넘는 황당한 상황이 이어진다.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 그는 청와대에서 각 부처 장관 등과 간담회를 갖고 “국회와 국민의 목소리를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다”며, “앞으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과 특검의 수사에 차분하고 담담한 마음가짐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헌재에도, 특검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그저 차분하고 담담하게 일체의 절차와 결과를 무시하고 있을 뿐이다.
 
1974년 8월 미국 상원의 탄핵표결 직전 사임한 닉슨은 탄핵의 원인이 된 워터게이트 사건과 그 은폐를 위한 거짓말에 관해 ‘유감스럽다’(regret)면서 끝내 사과(apology)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으로서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이 모든 결과는 제가 안고 가겠다”고 말했던 어떤 이와 그대로 통한다.
 
하지만 닉슨은 사임 3년 뒤에 이루어진 영국 언론인 데이비드 프로스트와의 저 유명한 정면승부 인터뷰를 통해 “나는 친구들과 국가와 우리 정부 시스템과 그리고 공무원이 되려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실망시켰다. 나는 미국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이것은 내가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이다. 내 정치생명은 끝났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 본회의장에서 웃었던 것처럼, 탄핵소추의 결과 파면되어 돌아가는 자기 집 앞에서도 또 그렇게 웃고 있던 전직 대통령을 마주한다. 과연 그는 누구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정치를 했던 것일까. 지나는 시민들을 때리던 깃대에 매달린 태극기와 성조기, 아스팔트를 뒤덮은 이스라엘기를 보며 그저 고맙고 뿌듯했을까.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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