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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존 레논·앤디워홀·믹 재거를 '타임 캡슐'로 만나다

혼란한 시대에 보는 ‘평화와 공존’ 해법…문화아이콘 51인의 미공개 인터뷰집

2018-07-12 18:00

조회수 : 9,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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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전쟁은 끝났어요! 당신이 그걸 원한다면, 존과 요코가 해피 크리스마스를 전합니다.’
 
1969년 12월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세계 12개 도시에 이 문구가 적힌 광고를 뿌렸다. 바로 이틀 뒤 미국의 영화감독이자 언론인이었던 하워드 스미스는 이들과 단독 인터뷰를 하게 된다.
 
“아마 내가 더 냉소적인 사람이라면, 당신에게 왜 평화를 팔아먹느냐고 물어봤겠죠?"(스미스)
“괜찮아요. 그럴 수 있어요. 하워드, 사람들이 전쟁을 늘 팔아먹는 걸 보지 않았나요? (중략)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건 그들의 행동과 정확히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에요."(레논)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 미국은 환멸과 분노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베트남전, 마틴 루터킹 목사 암살, 성 소수자 차별 등 거대한 혼란이 들끓었고, 새 시대를 향한 열망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됐다. 반전 운동, 여성 해방 운동, SDS(민주 사회를 염원하는 학생들), 동부 주요 도시에서 최초로 당선된 흑인 시장들.
 
문화계에서는 ‘카운터 컬처’(기성세대에 대항하는 청년 문화)란 문화 혁명이 물꼬를 텄다. 약물 확산 등 사회적 문제로 후대에 이 혁명의 가치는 절하되기도 하지만 당대의 정치, 사회적 변화를 추동할 만큼 지대한 것이었다. 혼돈의 시기를 표류하던 예술가와 젊은이들은 ‘평화와 공존’의 해법을 그 안에서 모색하고자 했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 반전 캠페인의 영향은 오늘날 미국 정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항의 시위 때 참가자들은 존과 요코의 '베드 인(Bed-in)' 퍼포먼스에 영감 받아 꽃을 들고 참가했다. 사진/뉴시스·AP
 
스미스는 카운터 컬처에 직접 개입하진 않은, 변두리의 관찰자였다. 록 스타부터 예술가, 정치가, 혁명가 등을 만났지만 객관적 영역에서 그들이 가진 힘과 중요성을 살폈다. 주간 라디오 쇼의 진행자로서 그는 당시의 인터뷰를 전파로 내보내며 대중들에게 통찰을 제공하는 역할도 자처했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스미스 테이프’는 이 라디오의 인터뷰 중 51개를 추린 것이다. 아들 캐스 콜더 스미스가 다락방에 50년 간 묵혀 있던 오리지널 테이프를 발견했고, 영화 감독 에즈라 북스타인이 글로 정리했다. 마치 봉인된 ‘타임캡슐’을 해제시키듯, 책을 여는 순간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 믹 재거, 앤디 워홀 등이 침을 튀기며 튀어 나온다.
 
“20년 전이 100년 전과 차이가 있나요? 폭력에 관해선 변한 게 없지요.” 레논은 당시 벌어지던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 베트남 전쟁의 폭력성이 인류 역사 속에서 계속돼 왔다고 말한다. 그와 반대로 자유와 반전을 외치던 우드스톡 같은 문화 현상은 사회에 평화의 싹을 틔웠다고 평한다.
 
“힘과 긍정적인 메시지들이 영국, 그리고 전 세계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밀어닥쳤어요. 세상의 저 많은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서로를 죽이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잖아요. 긍정적이면서 환상적이었어요.”
 
'농담으로 인종차별을 허문' 코미디언 딕 그레고리는 인터뷰 1년 전 ‘평화와 자유당’ 후보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스미스와의 대화에서 그는 인종차별을 비롯 당대 미국에 존재하던 ‘수많은 분열’의 해법을 이야기한다.
 
미국 코미디언 딕 그레고리. 사진/뉴시스·AP
 
“이제, 인간 존엄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요. 이제, 서로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해요.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들을 떨쳐내는 것에 대해 논의해야 하고요. (중략) 나는 우리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일단 채널을 열어둬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거에요.”
 
유명인 저격을 서슴지 않던 당시는 혐오와 분노가 비정상적으로 표출된 시기이기도 했다. ‘팝아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앤디워홀은 인터뷰에서 그에게 총격을 가한 밸러리 솔라나스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자세히 풀어 놓는다. 임상적 죽음까지 판정 받고도 살아난 그는 말미 “어떤 상처가 가장 아픈지 묻지는 말아달라”고 너스레 떠는 여유도 부린다.
 
비틀스 조지 해리슨. 사진/뉴시스·AP
 
미처 알지 못했던 문화계 아이콘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다. 조지 해리슨은 비틀스 활동 당시 곡을 많이 쓰지 못한 이유가 폴 매카트니 때문이라고 털어 놓는다. 그는 자신이 애써 한 곡을 쓰면 폴은 “나도 하나 썼어. 이런 곡이야. 다라라~”라며 맞받아쳤다고 이야기한다.
 
에릭 클랩튼은 무대 위에서 연습하지 않은 곡을 노래할 때면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털어놓고,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는 투어기간 긴장되지 않았냐는 물음에 “오히려 당신이 긴장한 거 아니냐”고 응수한다. 도어스의 짐 모리슨은 혁명적이던 음악이 갈수록 변해간다는 세간의 평을 묻자 “케케묵은 뻔한 소리를 반복하고 있다”며 스미스와 마찰을 벌이기도 한다. 검열되지 않고 전개되는 대화들이 당시의 시간과 감성을 고스란히 복원해내고 있다.
 
찬찬히 살펴보면 난민, 성 차별 등 분열이 여전한 오늘날 혼란의 세계에 유의미한 이야기들이 많다. 텍스트를 정리한 북스타인은 “(오늘날) 인종차별이 신문 1면을 장식하는 날이 많고, 사회는 정치적으로 양극화되고 있다”며 “5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책이) 그 어느 때보다 현재에 더 적절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한다.
 
신간 '스미스 테이프'. 부제는 '록이 찬란했던 날들의 기록'이다. 사진/덴스토리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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