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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배터리②) 정부 원인규명·각종 대책에도 ESS 또 화재... 왜?

안전조치 미이행 상태서 ESS 화재… 배터리 충전율 문제 지적도

2019-09-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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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아경 기자] 지난 6월 정부가 ESS 화재원인조사와 안전강화대책을 발표한 이후 또다시 ESS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화재 원인으로 배터리 충전상태(SOC)와 각종 제어 및 보호장치 문제 등을 짚으면서도 화재 원인에서 쏙 빠졌던 '배터리' 문제를 포함해 재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전조치 마무리 안된 상태서 화재 발생 
 
지난 24일 강원 평창서 발생한 ESS 화재는 정부의 안전조치 이행결과 최종 승인을 받기 전이었던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당시 평창군 평안리 풍력발전소 ESS 발전실에선 원인 미상의 불이 났고, 리튬이온배터리 2700개와 전력변환장치(PCS) 1개 등 발전실 414.3㎡가 모두 탔다.
 
삼성SDI의 배터리가 사용됐고, 설계·조달·시공(EPC)은 효성중공업이 맡았다. 삼성SDI에 따르면 해당 ESS는 2015년 말 준공돼 안정적으로 운영됐고, 화재 직전 셀 교체는 없었다. 충격에 대한 보호장치, 모니터링 비상정지 시스템 등 새 ESS 기준에 상응하는 안전조치도 모두 적용했다.
 
다만 최종 안전조치 관련 승인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해당 ESS의 운영 업체인 효성중공업 관계자는 "안전조치 매뉴얼에 따라 여러 조치를 진행했고 통신 등 정부에서 후속조치 요구가 있었다"면서 "최대한 마무리해서 전기안전공사에 안전점검을 신청하려고 하기 전 단계서 화재가 났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6월 이후 모든 ESS 사업장을 대상으로 전기적 보호장치 설치 등과 각 사업장에서 온도, 습도 등 운영환경의 관리, 배터리 과충전 방지 등의 조치를 취하라는 방침을 세웠다. ESS 사업장은 공통안전조치를 완료하면, 전기안전공사에 결과서를 제출하고 이를 점검받아야 한다.
 
원인은 조사 중이지만, 배터리 결함으로 보기엔 아직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정부의 화재 원인 발표 당시 일부 배터리 셀에서 제조 결함이 발견된 LG화학과는 달리 삼성SDI 배터리가 들어갔던 ESS 화재는 시공 불량이나 작업자 부주의, PCS 파손 등으로 원인이 명확히 밝혀진 바 있기 때문이다. 
 
9월24일 오전 11시29분께 강원 평창군 미탄면 평안리 산꼭대기의 풍력발전소 배터리실에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불이 나 화염이 치솟고 있다. 사진/평창소방서 
 
과도한 충·방전이 문제?… 충전상태와 화재 관련성 주목    
 
지난 8월30일 충남 예산서 발생한 태양광 연계 ESS의 화재 상황은 지난 24일의 것보다 구체적이다. 당시 태양광 ESS는 충전상태(SOC)를 70%로 하향 조정해 가동했다가 95%로 높여 시운전을 하던 중 화재가 발생했다. 해당 사업장의 배터리를 납품한 LG화학이 배터리 안전점검 조치를 완료한 후 SOC를 95%로 높여도 된다고 권고한 다음 발생한 일이다. 당시 PCS 업체는 오후 6시경 이상징후가 보인다고 발전사에 통보했고, 7시께 방전을 시작하자마자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1월 전북 장수서도 비슷한 형태의 태양광 ESS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LG화학은 배터리 안전점검 끝에 SOC를 당시 65%에서 100%로 상향 조정할 것을 권고했고, 이후 ESS에선 불길이 솟았다. 
 
전문가들은 배터리 충전율과 화재의 상관관계를 짚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내 ESS용 배터리는 해외에 비해 완전 충전돼 유지되는 경우가 많고, 전기차에 비해서도 충전율이 높다는 지적이다. 리튬배터리 특성상 과방전이 되거나 과충전이 되면 수명이 급격히 줄어든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재생에너지 연계형 ESS는 빈번한 충·방전 횟수 등을 비롯해 사용조건이 전기차에 비해 극악하다"며 "SOC 상한과 하한을 조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극악한 상황일수록 배터리 제조사의 기술력이 더 드러난다"며 "기술력이 떨어지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화학공학부 교수도 "SOC를 100%로 꽉 채우면 위험하지만, 80~90%는 (배터리가) 터질 수 없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SOC의 상한을 조절한 상태에서도 화재가 난다면 배터리 문제로 추정할 수 있단 것이다. 
 
SOC 문제와 함께 일각에선 전기적 충격현상인 '서지'(Surge) 문제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즉 ESS 배터리 온도가 급상승하는 '서지' 상황에서 이상상태를 경고해주거나 유사 시 전원을 차단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ESS 화재 원인조사, 원점서 다시 해야
 
다만 SOC나 서지 문제 등은 모두 추정일 뿐 ESS 화재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점에서, 특히 화재 원인 이유로 면죄부를 받았던 배터리 결함 여부까지 재조사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정부의 원인조사 발표 전 ESS 조사위가 참고했던 국과수의 법안전감정서 총 6건 가운데 5건은 '논단 불가'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박철완 교수는 "국감에서 ESS 사고조사위원회를 불러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며 "국감서 상황파악하고 감사원 감사까지 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6월 △배터리 보호시스템 미흡 △운영환경관리 미흡 △설치 부주의 통합보호·관리체계 미흡을 주된 화재 원인으로 추렸다. 당시 ESS 조사위는 LG화학의 중국 난징공장서 만든 배터리 셀에서 극판 접힘, 절단 불량, 활물질 코팅 불량 등의 제조 결함을 확인했지만, 이를 '직접적인 화재 원인'으로 지목하진 않았다. 해당 결함을 모사한 셀을 제작해 충·방전 반복 시험을 180번 이상 수행했지만 불이 붙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조사위는 "결함이 있는 상태에서 충·방전 범위가 넓고 만충 상태가 지속 유지되면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고만 설명했다.
 
이아경 기자 akl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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