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용훈 기자]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도 약화되는 등 제조업 위기 심화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도화 전략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산업구조의 질적 성장을 기하면서 제조업 부가가치율을 제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작/뉴스토마토.
14일 <뉴스토마토>가 창간 4주년을 맞아 위기의 제조업 해법과 관련해 경제전문가 10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같은 주문이 쏟아졌다.
우선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제조업이 마주한 상황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규정했다. 이 교수가 말하는 위험수위는 특정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제조업 전 분야에 걸쳐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국내에는 새로 짓는 제조업 공장이 거의 없다"며 "기존 공장들이 문을 닫고 외국으로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제조업 위기는 이미 상당히 진행됐다"며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느끼지 못할 뿐"이라고 단언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은 "우리가 사실 만드는 건 잘하지만 최종 조립품을 이루는 부품과 소재 등 핵심 요소는 처음부터 해외에서 가져와 만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조업은 하드웨어·제조의 경쟁력은 갖고 있지만 소프트웨어·서비스 융합 역량은 미흡하다"고 진단했다.
김남훈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그간 기업들이 기초연구 투자에 소홀했던 점을 아쉬워했다. 김 위원은 "현재 기술위기라고 부를 만한 품목들이 많지 않다"며 "성장하는 동안 기업이나 정부가 투자해서 기술력을 키웠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산업정책팀장은 국내 제조업 경쟁력은 총체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라는 점을 우려했다. 강 팀장은 "전통적인 제조업 주력 업종이 대부분 중국업체에 따라잡힌 상태"라며 "철강과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스마트폰 뿐 아니라 최근에는 액정표시장치(LCD)까지 중국업체로부터 시장 점유율을 역전당했다"라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소 경제연구실장은 "반도체는 글로벌 사이클 때문이지만 자동차가 가장 우려스러운 분야"라며 "반도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제조업 경쟁력은 상당 기간 하락이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지금까지 한국경제를 지탱해온 제조업이 이처럼 흔들리는 이유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평균에도 못 미치는 낮은 제조업 부가가치율을 꼽는 지적이 많았다. 부가가치율이란 총생산액에서 부가가치가 차지하는 비율로 한 산업의 노동 생산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우리 제조업이 양적인 성장은 이뤘지만 산업 생태계가 취약해 부가가치 창출 역량이 낮다는 것이다. 때문에 제조업 분야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과 동시에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는 조언이 상당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산업혁신팀장은 "미래 4차 산업혁명과 글로벌 가치 사슬의 격변기에도 지금처럼 노동과 자본의 양적 투입에 의존한 추격자 모델을 지속할 경우 산업경쟁력 도태는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해법으로 정부의 혁신유인인프라 구축을 제안했다. 즉 기업의 규제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길은선 산업연구원 산업정책연구본부 부연구위원은 산업 전 분야에 걸친 질적 성장에 집착하기보다 특정 한 분야에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길 위원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특성상 메모리반도체의 기술적 우위만으로도 경제 전반의 호황을 가져다줄 만큼 큰 수출과 생산의 증가를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투자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에 힘을 실어 주고 현장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조업 혁신에 관심이 있다면 공무원들이 탁상행정을 할 게 아니라 현장에 계신 분들을 선봉에 세워야 한다"며 "나아가 중소기업 2·3세들이 대를 이어서 기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인재 양성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까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제조업 르네상스 태스크포스(TF)' 단장을 맡았던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는 오히려 외부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시각을 보였다. 조 교수는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하는데 최대 기회를 제공한 중국이 제조역량을 축적하면서 우리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며 "오히려 미·중 간의 견제와 내부 과잉생산 등으로 조정국면에 들어선 현 시점이 한국제조업의 체질 개선의 절호의 기회"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