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풀무원이 300억원 규모 채권을 발행한다. 은행 대출상환을 위한 자금 조달이다. 풀무원은 지난해부터 수차례에 걸쳐 채권을 발행해 부채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지만 재무상황은 아직 괜찮아 보인다. 이번에 발행하는 채권은 인수 증권사들이 되팔 예정이지만 지금으로선 개인에게까지 기회가 올지 알 수 없다. 다만 이와 발행조건이 비슷한 풀무원의 일부 채권이 장내에서 거래되고 있으므로 이를 매수하는 방법이 있다.
23일 풀무원은 최소 300억원, 최대 500억원 규모로 발행하는 이번 채권의 발행금액과 금리는 하루 전 진행한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오늘 중 확정될 예정이다. 풀무원이 제시한 금리는 연 4.6~4.9%다.
다만 이 채권은 오는 29일 청약일에 증권사들에게 배분될 예정이다. '공모'라고 이름이 붙어 있는 채권이지만 실제로는 KB증권과 NH투자증권, 삼성증권, 케이프투자증권이 전액 인수한다. 대표 주관사 관계자는 "따로 개인 대상으로 공모 청약을 하지는 않을 예정"이라며 "나중에 개인에게도 셀다운할 가능성이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풀무원이 발행하는 이번 채권의 정확한 명칭은 ‘무기명식 이권부 무보증 채권형 신종자본증권’ 즉 흔히 영구채라고 부르는 30년 만기 상품이다. 풀무원은 과거에도 여러 번 영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 이력이 있다.
지난 6월30일에는 400억원 규모 후순위 사모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했다. 30년짜리 BW라는 점도 특이한데, 신주인수권과 채권을 따로 떼어서 거래할 수 없는 비분리형 BW인 점도 남들과 다른 점이었다. 장내에서 채권을 매도하려면 신주인수권이 붙은 상태로 거래해야 하고, 신주인수권을 행사할 때는 채권을 행사가액으로 지불하는 구조다. 신주인수권 행사가액은 2만3659원으로 현재 주가보다 상당히 높아 당분간 신주인수권이 행사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9월30일엔 700억원 규모 후순위 공모 전환사채(CB)도 발행했다. 연 4.8%를 내건 30년 만기 채권이다. 전환가액은 당시 주가의 3배 가까운 2만7000원으로 정했는데, 일종의 자신감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2015년 8월6일에 발행한 후순위 사모 CB(300억원)와 사모 BW(400억원)도 아직 남아있다. 두 채권도 모두 30년 만기다.
이처럼 풀무원은 수차례에 걸쳐 채권을 발행해 필요한 자금을 빌려 썼다. 이 채권들을 보면 일반적인 회사채와는 차이점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30년 만기 채권이라는 점. 은행이나 보험사 등 금융기관과 POSCO, SK텔레콤, 롯데쇼핑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영구채를 발행하는 경우는 많아도 풀무원 같은 중견기업이 발행하는 영구채는 흔치 않다. 그만큼 발행기관을 믿을 수 있어야 영구채를 발행해도 시장에서 소화된다.
두 번째는 CB, BW 등 메자닌채권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신주로 인수할 수 있는 행사가액이 당시의 주가보다 상당히 높게 정한 경우가 많은 점도 눈에 띈다. 게다가 주가 하락 시 행사가액을 낮추는 옵션조항도 없다. 오직 주식 수가 늘어나는 경우에만 그에 비례해 행사가액을 조정할 수 있게 했다.
세 번째 후순위인 경우가 많다. 일반 채권보다 상환순위에서 밀리는 채권이란 점. 이 모든 조건을 종합하면 ‘채권 상환에 자신이 있다’ 또는 ‘채권 흥행에 자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풀무원이 과연 이만한 자신감을 내세울 수 있는 상황인지 알아보기 위해 먼저 시장의 평가를 확인해 보자.
위의 채권들 중에서 지난해 9월에 발행된 ‘풀무원66CB’가 현재 장내에서 거래 중이다. 신용등급은 다른 채권들과 동일한 BBB+, 표면금리는 연 4.80%다. 발행된 지 이제 막 1년을 지나 3개월 단위로 나오는 이자도 4번 지급됐다.
이 채권의 현재가는 1만212원, 이달 들어 1만200~1만300원 사이를 오가고 있다. 1만200원을 주고 채권을 사면 480원의 이자를 주니까 수익률은 4.7%, 채권가격이 조금 올라 수익률도 소폭 하락했지만 이 정도면 비슷한 신용등급의 다른 채권물에 비해 괜찮은 편이다.
단, 영구채에 투자할 때는 주의할 것이 있다. 영구채는 대부분 발행할 때 콜옵션 조건을 달아놓는다. 채권 만기가 되기 전에 미리 약속된 날짜에 채권자가 채권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풋옵션이다. 반대로 콜옵션은 회사가 채권 만기 전에 미리 상환할 수 있는 권리다. 상환할 때는 원금만 갚는다. 투자자가 장내에서 1만200원에 채권을 매수해도 풀무원이 콜옵션을 행사하면 1만원만 상환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콜옵션이 붙은 채권을 액면가 1만원보다 높은 값에 장내시장에서 매수할 때에는 채권이자로 받을 수익에 콜옵션으로 잃게 될 원금 일부를 반영해서 목표가를 정하고 매수해야 한다. 콜옵션 행사 전에 매도하는 방법도 있지만 콜옵션 기일이 다가오면 채권가격은 액면가에 다가서기 마련이다. 물론 콜옵션은 회사가 채권을 상환할 능력이 되고 또 그때 시장금리 상황도 유리해야 행사할 것이다.
채권마다 콜옵션 조건이 다르므로 확인해 봐야 한다. 이번에 풀무원이 발행하는 영구채의 콜옵션은 발행 3년 후 매 이자지급일마다 행사가 가능하게 돼 있다.
풀무원의 자회사들이 영위하는 사업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풀무원의 주가도 계속 흘러내리고 있다. 하지만 주식과 달리 채권은 회사가 정상화될 수 있단 확신만 있으면 투자가 가능하다.
심지연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풀무원의 F&C(푸드앤컬쳐)부문에서 급식 매출이 절반, 휴게소 매출이 30% 정도 비중어서 정상화에 다소 시간이 걸리는 구조라며 3분기에도 영업이익 적자폭이 전 분기와 비슷하게 유지된 것으로 분석했다. 심 연구원은 10월부터 코로나 격리 조치가 1단계로 완화돼 급식 업장이 대부분 4분기부터 영업을 재개하고, 구조조정이나 임차료 감면도 올해 마무리돼 내년에 사업이 정상화되면 마진 등 수혜가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