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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깅스 뒤태 몰카'에 '성적 빡침'…대법 "성폭력처벌법 위반 유죄"
"기분 더러워…왜사나?"…"성적 모멸감·인격적 분노로 해석해야" 첫 판결
입력 : 2021-01-06 오후 2:00:39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공개된 장소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하반신 뒤태를 몰래 촬영한 행위도 성폭력처벌법 위반으로 처벌 대상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가 보호하는 '성적 자유'에 대한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첫 판결이어서 주목된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6일 밝혔다.
 
대법원 청사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버스 여성승객 상대 '몰카' 
 
A씨는 2018년 버스에 탑승해 뒤쪽 출입문 맞은편 좌석에 앉아 있다가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여성 B씨가 하차하기 위해 뒤쪽 출입문 옆에 서자 자신의 휴대폰으로 B씨의 하반신 뒤태 동영상을 약 8초간 촬영했다. 당시 B씨는 엉덩이 바로 위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운동복 상의와 함께 검정 레깅스(신축성이 뛰어난 타이츠 모양의 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A씨의 범행은 곧 발각됐다.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B씨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다. B씨는 A씨에게 다가가 휴대폰을 보여달라고 요구했고, A씨는 "내려서 바로 지울게요. 한 번만 봐주세요"라고 용서를 빌었지만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 단계에서 A씨는 '얼굴도 예쁘고 전반적인 몸매가 예뻐 보여 촬영했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B씨는 "“기분 더럽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나, 왜 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사건 당시 감정을 진술했다.
 
1심 유죄·2심 무죄
 
1심은 유죄를 선고하고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외부로 직접 노출된 피해자의 신체부위가 목 윗 부분과 손, 레깅스 끝단과 운동화 사이의 발목 부분이 전부였던 점 △피해자의 특정 신체부위를 확대하거나 부각시켜 촬영하지는 않은 점 △특별한 각도나 특수한 방법이 아닌 통상 비춰지는 부분을 그대로 촬영한 점 △피해자가 입고 있던 레깅스는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어 젊은 여성이 이를 착용했다고 해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고 할 수 없는 점 △피해자의 사건 당시 감정 진술이 불쾌감이나 불안감을 넘어 성적 수치심을 나타낸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피해자가 처벌불원의 의사를 표시한 점 등이 이유였다.
 
사건 당시 피해자 감정 주목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어 유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심과는 달리 △영상에 담긴 모습이 주로 피해자의 하반신이고 신체의 굴곡과 특징이 드러난 점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촬영된 점 △A씨가 진술한 범행 동기 △피해자의 사건 당시 감정 등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가 성적 자유를 침해당했을 때 느끼는 성적 수치심은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분노·공포·무기력·모욕감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며 "성적 수치심의 의미를 협소하게 이해해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이 표출된 경우만을 보호의 대상으로 한정하는 것은 성적 피해를 당한 피해자가 느끼는 다양한 피해 감정을 소외시키고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을 느낄 것을 강요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눈 내린 대법원 청사 전경. 사진/대법원
 
"성적 수치심 유발 충분히 인정"
 
이어 "'기분 더럽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나, 왜 사나 하는 생각을 했다'라는 피해자의 진술은 피해자의 성적 모멸감, 함부로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이용당했다는 인격적 존재로서의 분노와 수치심의 표현"이라고 설명하고 "성적 수치심이 유발됐다는 의미로 충분히 이해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결국 촬영의 대상, 촬영 결과물, 촬영의 방식 등 피해자가 촬영을 당한 맥락, 피해자의 반응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와 같은 성별, 연령대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들의 관점에서도 피고인의 행위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촬영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같은 신체 부분이라도 어느 장소에서, 어떤 상황 하에서, 어떤 방식으로 촬영됐느냐에 따라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지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면서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활용된다거나, 피해자가 레깅스를 입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는 사정은 레깅스를 입은 피해자의 모습이 타인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타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공개된 장소 노출도 '몰카' 안돼"
 
특히 "피해자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거나 생활의 편의를 위해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의사에 의해 드러낸 신체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본인의 의사에 반해 함부로 촬영 당하는 맥락에서는 성적 수치심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통상 일반인의 시야에 드러나도록 한 신체 부분은 일정한 시간 동안만 관찰될 수 있고, 관찰자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으며, 기억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면서 "그러나 그 모습이 촬영되는 경우 고정성과 연속성, 확대 등 변형가능성, 전파가능성 등으로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하고 나아가 인격권을 더욱 중대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최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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