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페이스북 트윗터
(시론)2020년 '올해의 사자성어' 유감
입력 : 2021-01-07 오전 6:00:00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2020년 한해를 한 마디로 표현할 사자성어를 꼽으라면 단연 1위가 무엇일까. <교수신문>아시타비(我是他非)’를 뽑았다. 글자 그대로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라는 뜻이다. 요즘 말로 하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쯤 되겠다. 이에 대해 적절한 사자성어라고 치켜세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진영논리에 기반한 어리석은 사자성어라고 조롱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조계종 군종특별교구 사무총장인 성진스님은 동국대 <법보신문>에서 아시타비(我是他非)를 선택한 분들의 마음은 경자년 한해 우리 사회 모순된 현상들을 이 네 글자로 표현하여 경종을 울리고자 함이었을테지만 이 말로 인해서 오히려 우리 사회가 누가 ()’이고 누가 타()인지를 놓고 다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시시비비(是是非非)’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조선후기 시인 김삿갓(김병연)’이 시()와 비() 단 두 글자로 지었다는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보면, ’시시비비是是非非非是是) 시비비시비비시(是非非是非非是) 시비비시시비비(是非非是是非非) 시시비비시시비(是是非非是是非)‘라 하여,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함이 옳지 않으며,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함이 옳지 않음이 아니다.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함이 이 그른 것이 아니며, 옳다는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함이 도리어 이 그른 것을 옳다 함이다라고 했다도대체 무엇이 옳다는 것인지, 무엇이 그르다는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김삿갓은 차라리 개시개비(皆是皆非 모두 옳고 모두 그르다)’가 더 맞다고 했다. 장님들이 각자 코끼리를 만져보고 코끼리의 모양을 서로 다르게 주장하듯이 각자의 입장에서 옳고 그름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한편, 미래통합당 선대위원장을 지냈던 신세돈 교수는, 2020년사자성어로 이구복방(利口覆邦)을 들었다. ’말 잘하는 입이 나라를 뒤집는다는 뜻으로, 맹자가 논어에서 했던 말 잘하는 사람이 나라를 뒤집은 걸 미워한다(오리구복방가자 惡利口覆邦家子)‘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세치 혀가 말재간을 부려 사람을 미혹시키고 올바른 판단을 그르치게 하므로 이를 경계해야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 해 대한민국은 코로나19’라는 기이한 전염병과 함께, 정치와 언론 그리고 검찰이 모든 이슈에 대한 판단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면서 국민들을 갈팡질팡하게 만들었다. 정치인들이야 원래 그렇다 치더라도 검찰과 언론에 대한 비판은 아무리 해도 모자랄 지경이 되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 엄격하게 칼을 휘둘렀어야 할 검찰이지만, 작금의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선택적 정의를 행하며 국민을 우롱한다는 비난을 받아오고 있다. 언론 역시 정론직필은 온데 간데 없고 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사안을 난도질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문득 조선 초기 명재상 황희의 일화가 떠오른다. 어느날 한 동네사람이 아들이 아프지만 선친 기일이니 제사를 지내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황희는 자네가 옳으니 제사를 지내게라고 답했다. 잠시 후 또 다른 동네 사람이 오늘 어머님 제사인데 기르던 개가 죽었으니 제사를 안 지내도 되겠지요?”라고 물었다. 황희는 자네가 옳으니 제사를 지내지 말게라고 했다. 하인이 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답을 내놓은 이유를 물으니 황희는 어차피 그들은 각자 듣고 싶은 말을 들으려고 묻는 것일 뿐, 내가 옳은 소리를 한다고 달라질 것이 아니다라고 했단다.
 
2021년 새해는 ‘누구는 옳고, 누구는 틀리다’는 말에도, 그를 부추기는 편가르기에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2020년 사회를 혼란케 한 각 주체들도 자중해야 할 일이지만 여론도 부화뇌동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2021년은 ‘아시타비’나 ‘이구복방’이 아니라, 온갖 고생을 견뎌 내며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는 ‘각고면려(刻苦勉勵)’가 필요한 때이다.
 
노영희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
 
최기철 기자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