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9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온 이대희 감독의 전작을 아는 사람이라면 ‘스트레스 제로’의 분위기가 너무나 바뀌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그만큼 이 감독의 전작은 ‘스트레스 제로’의 분위기와 달랐다. 이대희 감독이 2012년 내놓은 ‘파닥파닥’은 시작부터 음침한 분위기와 불안감을 조성하는 배경 음악, 물고기가 산 채로 회가 쳐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충격을 준다. 당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인 줄 알고 어린아이가 관람을 했다가 기겁을 하기도 했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그랬던 이 감독의 작품이 확 달라진 것.
이대희 감독은 9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것에 대해 “9년이라는 시간이 길다며 긴 시간이다. 사실 그 정도 시간이 지났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스트레스 제로’만을 제작한 것이 아니라 로봇으로 변해버린 아빠와 딸의 이야기를 다룬 ‘강철아빠’라는 작품을 몇 년간 기획 제작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스튜디오에 아이템이 많이 있어야 될 것 같았다. 그래서 1주일에 한번씩 메인으로 진행하는 작품 외에 다른 기획 아이템을 가져와 회의를 했다. 그때 제출한 아이템 중 하나가 ‘스트레스 제로’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 아이템이 영진위 본편지원사업에 선정이 됐고 중국에 선판매가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완성을 해야 하는 시점이 정해져 버렸다”고 했다. 이 감독은 이러한 점을 언급하면서 작품도 각자의 운명이 있는 것 같단다.
‘파닥파닥’의 암울한 분위기와 달리 ‘스트레스 제로’의 분위기는 아이들이 보기 힘들었던 전작과 비교하면 내용적 측면이나 색감, 캐릭터 모든 면에서 한층 밝아졌다. 이러한 변화의 이유를 이 감독은 아이들이라고 했다. 그는 “큰 변화가 아이들이다. ‘파닥파닥’을 기획할 당시 내가 총각이었다. 세상을 많이 삐딱하게 바라 봤다. 세상을 내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는 것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어린 아이와 함께 영화를 볼 기회가 없었단다. ‘파닥파닥’ 개봉 후 이 감독은 아이가 생기고 함께 극장에 가사 애니메이션을 자주 봤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 감독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애니메이션을 기획하게 된 것. 그는 “색감이 밝아진 것도 동일 선상으로 볼 수 있다. 개인적 동기도 있지만 ‘뽀로로’ ‘코코몽’ 등을 제작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302플래닛과 함께 한 것도 색채 변화에 영향을 줬다”고 했다.
‘파닥파닥’이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등에서 수상을 하긴 했지만 저예산 애니메이션이다 보니 상영관 확보 부족으로 인해 흥행에 실패했다. 이로 인해 이 감독은 흥행 실패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시기를 겪어야 했다. 그는 “길을 가다가 욱하는 감정이 올라오곤 했다. ‘이런 감정을 영화로 만들 순 없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딸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는데 옆에서 둘째가 셋째의 장난감을 빼앗아 가는 상황이 생겼다”며 “막내가 감정을 숨김없이 분출하고 울부짓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불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 스케치북에 불괴물 그림을 그렸는데 ‘스트레스 제로’의 불괴물에 대한 아이디어 초석이 됐다”고 밝혔다. 여기에 PD의 제안에 스트레스를 없애는 음료라는 아이디어가 더해져 점차 스토리를 발전시켰다고 했다.
'스트레스 제로' 이대희 감독 인터뷰. 사진/이노기획
이 감독은 ‘스트레스 제로’를 통해 직장인들이 고단한 삶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집중했다. 극 중 불괴물이 자주 등장하는 장소 역시 회사다. 이 감독은 “다양한 스트레스가 있지만 보통 자신의 의지에 반하고 원치 않는 무언가를 할 때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안 받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직장 생활 중 스트레스를 받고 산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타인의 지시를 받고 일하는 짱돌, 준수 등이 스트레스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있어 정당하다고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또한 짱돌이 새 직장을 구하는 장면에서 회사마다 ‘뼈를 깎는 각오로 매출 성장을’ 등과 같은 경쟁을 조장하는 듯한 문구가 인상적이다. 이 감독은 이러한 설정을 넣은 것에 대해 “요즘 회사들이 예전에 비해 사람 중심적인 듯 보이나 실상은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사회가 그걸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는 점점 다양해지고 심해진다”고 설명했다. 또한 “요즘은 ‘스트레스 제로’처럼 겉으로 보란 듯 저런 슬로건을 건 회사가 많지 않지만 스트레스를 다루는 애니메이션인 만큼 더 강조해서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의도를 전했다.
타조와 고박사가 각각 퀵 서비스 일과 푸드 트럭을 운영하는 것에 대해 이 감독은 “어린이들과 같이 보는 애니메이션이지만 먹고 사는 문제, 즉 캐릭터의 직업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타조와 고 박사를 짱돌이나 준수처럼 현실적인 스트레스를 애니메이션에 담아내지는 않았다. 그는 “퀵 배달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의 스트레스, 푸드 트럭을 운영하는 이들의 스트레스와 애환을 담기 보다는 애니메이션 아이템으로 생각하고 접근했다”고 밝혔다. 그는 “삼총사 히어로가 됐을 때 각자 자신의 특성에 맞는 아이템이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고박사는 자동차, 타조는 오토바이, 짱돌은 호버 보드”라고 했다. 또한 타조와 고박사가 가정이 있고 고정된 직장에 다니는 짱돌에 비해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았으면 하는 이 감독의 바람이 담겨 있기도 했다. 그는 “어른이 되어도 어렸을 때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가는 느낌으로 묘사하고 싶었다”고 했다.
또한 짱돌이나 고박사, 타조가 아내를 무서워하는 모습 역시 애니메이션적인 과장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파닥파닥’ 당시 집을 팔아 먹고 아내가 무서워졌다”고 농담을 건넸다. 그리고는 “영화에서 과하게 표현했지만 짱돌의 아내도 마음이 여린, 가족의 안전을 걱정하는 평범한 엄마”라고 해명을 했다. 또한 “아내의 입장에서 짱돌의 행동이 철없어 보일 때 그에 동조하는 친구들이 곱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타조, 고박사가 오버해서 무서워하는 것은 진지한 표현이라기 보단 애니메이션적인 과정”이라고 설명을 했다.
'스트레스 제로' 이대희 감독 인터뷰. 사진/이노기획
‘스트레스 제로’는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뿐 아니라 어린 아이들의 학업 스트레스가 성인이 된 후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언급하기도 한다. 이 감독은 “직장인 스트레스 못지 않게 아이들의 학업 스트레스도 경쟁이 극심한 사회에 단면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특히 드라마 ‘스카이캐슬’처럼 학업 스트레스를 소재로 다루고 있는 드라마가 대중에게 공감을 받은 것이 그 반증이라고. 그러면서 이 감독은 ‘스트레스 제로’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며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게 아닌지 한 번 정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또한 이 감독은 ‘스트레스 제로’를 통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의 여유를 찾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세상은 편리해지고 인간에게 시간적 여유를 많이 주는 것 같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세상은 빨라지고 더 많고 복잡한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 경쟁은 세대와 국경을 넘어 무한 경쟁의 시대”라고 했다. 그리고는 “인간이 만들어낸 빠른 발전 속도 속에 우리는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여유 없는 삶을 살아간다”며 “조금 여유를 챙기고 살면 스트레스 킬러 같은 약물에 의존하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살지 않을가’라는 생각을 담았다”고 했다.
‘스트레스 제로’는 열린 결말로 끝을 내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을 더한다. 이 감독은 애니메이션의 결말에 대해 “후속편을 염두해 두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스트레스와 사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영화내 갈등은 해소가 됐지만 우리의 삶에 스트레스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는 “우리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대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했다.
끝으로 이 감독은 “물론 영화가 잘 되어 속편이 나올 수 있다면 좋겠다”며 “현재는 ‘강철 아빠’라는 로봇이 되어 버린 아빠와 딸의 이야기를 진행 중이다”고 했다.
'스트레스 제로' 이대희 감독 인터뷰. 사진/이노기획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