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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추행 피해 여성 블랙아웃 단정해 무죄 판단은 부적절"
"기억 못한다는 이유로 동의 가능성 판단은 부당" 판단
입력 : 2021-02-21 오전 9:00:00
[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술에 취해 추행을 당한 피해자의 상태를 이른바 '블랙아웃'이라고 단정해 혐의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준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에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은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했다"며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준강제추행죄의 구성요건인 '심신상실 상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김씨는 지난 2017년 2월24일 오전 2시24분쯤 경기 안양시에 있는 한 호텔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 있는 A(당시 18세)씨의 옷을 벗긴 후 몸을 만지는 등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김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10개월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40시간을 명령했다.
 
2심은 "피해자는 이 사건 당시 심신상실 상태에 있지 않았다. 피고인에게는 피해자가 심신상실 상태에 있음을 인식하고서 이를 이용해 추행한다는 고의가 없었다"는 김씨의 항소를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모텔 내외부에 설치된 CCTV의 사진과 영상에 의하면 피해자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비틀거리거나 피고인이 피해자를 부축하는 모습은 확인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가 모텔 1층에서 카운터가 있는 3층까지 계단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바 피해자가 정신을 잃었다거나 심신상실 상태에 이르렀다고 단정할 만한 장면은 없다"고 설명했다.
 
또 "모텔 카운터에서 근무한 증인은 당심에서 '피해자가 술에 취했으면 고개를 수그린다든지 자세가 그럴 텐데 그냥 반듯하게 서 있었고, 모텔 객실로 둘이 나란히 편안하게 들어갔다. 비틀거리는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다. 조금 후에 경찰관들이 와서 객실 인터폰으로 피해자의 이름을 물었는데, 전화기 너머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이름을 묻고 피해자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는 증언도 제시했다. 
 
아울러 "피해자는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방으로 이동한 것은 기억하지만, 그 이후의 일은 노래방에서 나와서 피고인을 만난 상황조차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그런데 피해자가 술에 취해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다면 피고인이 그러한 상태의 피해자를 데리고 여러 층에 위치한 술집들을 돌아다니거나 모텔 1층에서 3층까지 계단으로 이동하는 것은 용이해 보이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스스로 행동한 부분도 기억하지 못할 소위 '블랙아웃'일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피해자와 피고인의 관계, 연령 차이, 피해자가 피고인을 만나기 전까지의 상황, 함께 모텔에 가게 된 경위 등 사정에 비춰 볼 때 피해자가 피고인과 성적 관계를 맺는 것에 동의했다고 볼 정황을 확인할 수 없다"며 "이러한 제반 사정에 대한 고려 없이 블랙아웃이 발생해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피해자가 동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봐 이를 합리적 의심의 근거로 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음주 후 필름이 끊겼다'고 진술한 경우 음주량과 음주 속도 등 사정들을 심리하지 않은 채 알코올 블랙아웃의 가능성을 쉽사리 인정해서는 안 된다"며 "피해자가 어느 순간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비틀거리지는 않고 스스로 걸을 수 있다거나 자신의 이름을 대답하는 등의 행동이 가능했다는 점만을 들어 범행 당시 심신상실 등 상태에 있지 않았다고 섣불리 단정할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피해자는 피고인이 추행할 당시 술에 만취해 잠이 드는 등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면서 원심의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이 사건 당시 짧은 시간 동안 다량의 술을 마셔 구토할 정도로 취했다"며 "자신의 일행이나 소지품을 찾을 방법을 알지 못하고, 사건 당일 처음 만난 피고인과 함께 모텔에 가서 무방비 상태로 잠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피해자는 인터폰으로 자신의 이름을 말해준 이후에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채로 다시 잠이 들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경찰이 모텔 객실로 들어오는 상황이었음에도 옷을 벗은 상태로 누워 있을 정도로 판단 능력과 신체적 대응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상태였다"고 부연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준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에 돌려보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 사진/대법원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정해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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