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의사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공인물의 명의로 다른 사람에게 처방전을 발급해준 행위는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이모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허무인 A씨 등의 명의로 7회에 걸쳐 처방전을 작성해 정모씨에게 교부한 행위가 구 의료법 17조 1항에 위반된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구 의료법 17조 1항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단을 그르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마취과 전문의 이씨는 지난 2016년 4월30일부터 7월22일까지 제약업체 영업사원 정모씨에게 가공인물인 A씨 명의로 발기부전 치료제 처방전 7장을 발급해주는 등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이씨는 약국 개설자가 아닌 정씨가 판매 목적의 전문의약품을 보관하는 행위를 방조하는 등 약사법 위반 방조 혐의도 받았다.
1심은 이씨에게 적용된 의료법 위반과 약사법 위반 방조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우선 의료법 위반에 대해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닌 허무인에 대해 처방전을 작성해 제3자에게 건네주는 행위는 의료법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약사법 위반 방조에 대해서는 "정씨가 피고인에게 처방전 발급을 요청할 당시 피고인에게 이를 이용해 의약품을 판매할 예정이란 점을 알렸다거나 피고인이 이를 알았을 것이란 점을 인정할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심은 약사법 위반 방조에 대해 무죄를 유지하면서도 의료법 위반에 대해서는 1심과 달리 유죄로 판단해 이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의료법 17조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의사로서는 처방전에 환자로 기재되는 작성 상대방으로서의 환자와 교부 상대방인 환자를 모두 직접 진찰해야 하고, 그러한 진찰이 전제되지 않은 채 처방전을 발급한 이상 교부의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불문하고 의료법 17조 1항을 위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또 "피고인이 처방전에 환자로 기재된 자가 아닌 자에게 처방전을 교부해 작성 상대방과 교부 상대방이 달라진 데다가 처방전 발급과 교부의 전제가 되는 진찰 행위 자체가 없었던 이상 처방전에 기재된 환자가 실재하지 않는 허무인이라고 해 달리 평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도 "의사 등이 구 의료법 17조 1항에 따라 직접 진찰해야 할 환자를 진찰하지 않은 채 그 환자를 대상자로 표시해 진단서·증명서 또는 처방전을 작성·교부했다면 구 의료법 17조 1항을 위반한 것으로 봐야 하고, 이는 환자가 실제 존재하지 않는 허무인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면서 이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이모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