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평가'에 나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정치권에서는 크게 3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박 전 시장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 열세인 4.7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집토끼 모으기', 마지막으로 임 전 실장의 '대선플랜'이다.
1. 부채의식
진보진영에게 박원순은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부 9년' 간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당시 진보진영 주요 인사들은 공권력에 의한 사찰 등으로 고통을 받았고, 소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 생계 자체가 어려웠던 경우도 있었다.
서울시장 박원순은 유일한 구명줄이었다. 민주당 내부에 소위 '박원순계'가 만들어진 이유도, 문재인정부 초기 박원순계 인사들이 중용된 것도, 박 전 시장이 진보진영 자원들을 꾸준히 지원하고 육성했던 것이 배경에 있다. 진보진영의 '종자씨'를 근 10년간 지켜준 사람이 바로 박원순인 것이다.
임 전 실장 역시 문재인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 이전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무부시장이었다. 그는 18대 총선 패배 이후 근 10년간 원외에 머물며 정치권에서 서서히 잊혀져갔지만, 박 전 시장의 도움을 받아 재기에 성공했다.
그렇기에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졌을 때 진보진영의 대응은 미지근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시민운동가들이 박 전 시장 사건 앞에서 일부 분열된 이유도, '피해호소인' 논란이 생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마 천하의 박원순이 그랬을리가...'
2. 집토끼 모으기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박 전 시장의 '권력형 성비위'에 따른 것이다. 안해도 되는 선거의 원인이 전적으로 박 전 시장에 있기에, 더불어민주당은 시작부터 불리한 위치에서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 야당 역시 이번 선거가 '박 전 시장의 권력형 성비위로 인한 선거'라는 점을 항상 강조하는 전략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민주당에 더더욱 불리한 것은, 박원순 서울시정 10년의 '공'이 성추문이라는 '과'에 덮힌 부분이다. 박 전 시장이 유일무이한 '서울 3선시장'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시 운영을 긍정평가하는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원순 성비위’라는 대명제 앞에선 '샤이 지지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임 전 실장이 '2차 가해' 논란에도 '박원순 재평가'의 깃발을 들어올린 것은, 결국 '집토끼 모으기'용 아니냐는 분석이다. 통상 투표율이 낮은 보궐선거에서는 여야 어느 쪽이 더 집토끼를 모을 수 있는지가 승부의 향방을 가른다.
'성추문은 있었지만, 과거의 성과는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번에 오세훈이 되면 박원순 10년의 성과는 사라질 것이다', '오세훈이 되면 문재인정부도 레임덕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논리다.
선거 승패를 떠나 이번에 '박원순 성비위' 이슈를 완전히 털어버릴 필요성도 있다. 그냥 묵혀 대선에서 야당의 공세를 계속 맞는 것보다, 이번 보궐선거에 아예 정리를 해버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바람직 할 것이다.
3. 임종석의 '대선 플랜'
임 전 실장의 발언이 본격 시작될 대선 레이스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현재 민주당 내 대선레이스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앞서나가고 이낙연 선대위원장이 추격하는 구도다. 이대로 선거가 민주당의 패배로 끝난다면 '책임론'에 자유롭지 못한 이낙연 위원장은 레이스에서 주춤할 수 밖에 없고, 이재명 경기지사의 독주체제는 강화될 것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제3후보' 등판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현재 임 전 실장은 정세균 국무총리, 추미애 전 법무장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광재 의원,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과 함께 제3후보 후보군에 속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임 전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첫 비서실장이자 박원순의 정무부시장으로, 당내 친문계와 박원순계를 묶어 낼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임 전 실장이 과거의 주군 박 전 시장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모습은, 친문계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