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고
, 앞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한다
. 경험은 혼란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 이에 동서고금의 선현들은 경험을 피하고 교훈을 얻는 지식을 가르쳐 왔다
. 그러나 경험하지 못한 교훈은 믿어야 할 지식으로 체화되기 어렵기 마련이어서, 어쩔 수 없이 실수를 경험하며 성장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 또한 상황의 변화와 새로운 상황의 등장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피할 수 없게 하는 측면이 있다
. 효율적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고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문제는 경험의 효율을 높여 교훈이나 지혜를 얻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 자기합리화 하는 경우부터 상황 인식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
, 인식은 정확했을지라도 대응에서 실수하는 경우
, 여기에다 우연과 요행 등까지 경험에 촘촘히 얽혀 있기 때문이다
. 때때로 같은 경험을 해도 다른 결론을 내리고 이를 교훈으로 여기기도 한다
. 효율적 경험을 제대로 하느냐 아니냐가 결국 인간의 성숙
, 사회와 국가의 성숙 수준을 가르게 된다
.
코로나19의 경험은 나, 우리, 우리 사회와 나라, 인류는 어떤 교훈을 얻고 지혜를 터득하고 있는 것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사람마다 원인에 대한 인식과 교훈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필자는 크게 세가지는 분명해졌다고 생각한다. 첫째, 자연은 인류가 생각한 것보다도 잔인하다는 것이다. 인류가 생태계를 파괴하는 속도가 가팔라지자 서식지를 잃은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미지의 생물체가 인류의 서식지로 옮겨와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온실가스 배출이 늘면서 발생한 기후 온난화로 2050년이면 전세계 주요 도시에 돌이킬 수 없는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증가하고 있다.
둘째,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봉쇄조치는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시켰다. 많은 나라에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경제 활동이 위축됐지만, 디지털에 의한 경제 활동은 오히려 더 왕성해졌다. 온라인 쇼핑, 온라인 영상 서비스, 온라인 근무 등 많은 활동이 디지털로 전환됐다. 선진국은 개도국보다 높은 재택근무, 원격근무 비율을 보였으며, 봉쇄 기간에도 원격근무는 계속될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몇 년 걸릴 디지털 전환을 불과 몇 주 만으로 앞당겼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디지털 전환은 지속될 것이다. 디지털 전환은 생산의 효율화, 소비의 디지털화를 통하여 지구 온난화를 줄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셋째, 사회 시스템을 재편해 회복력을 높여야 한다는 점이다. 의료 시스템이 발달한 선진국이나 그렇지 못한 개도국 모두 코로나19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중앙집중식 의료체계와 대도시의 취약성을 극복하는 것에서부터 글로벌 밸류체인의 리스크 관리, 국가의 재난 지원금 지급에 이르기까지 사회 시스템 전반에 걸쳐 리스크를 줄이고 안전과 복지를 높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우리가 터득해야 할 지혜가 있다고 보고, 그 답을 디지털 전환과 도시 공간의 재편에서 찾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람·사물과 자연 간 관계에서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해야 한다. 이때의 디지털 전환이란 단순히 5G 통신 인프라를 확충하거나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확대하는 것 정도가 아니다. 자원의 사용을 최소화해 환경 파괴를 줄이고, 재활용을 늘리고, 환경 보호를 위한 교감과 협력을 강화해 관련 의사결정의 효율성과 정확성을 높이고, 탄소배출 이동을 줄이고 친환경적인 보행권 도시를 만들어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물론 이것은 필자가 정리한 교훈이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조기 봉쇄의 필요성, 강력한 거리두기 조치, 신속한 재난지원금 지급, 빠른 백신 접종 등을 교훈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재 언론의 인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팬데믹에 이른 문제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인식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책임 공방의 대응적 조치 수준에 마무르기 때문에 진정한 교훈으로 보기 어렵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세계적으로는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도시 공간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인데, 수도권에 고밀도 아파트를 공급하는 이슈가 현안인 한국 사회에서 팬데믹에 대한 교훈은 방역에 대한 논쟁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문제에 대한 깊은 인식, 반성과 통찰을 통해 현명한 교훈과 지혜를 얻을 때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10년, 20년 후 우리가 팬데믹을 겪고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교훈과 지혜를 얻지 못했다는 반성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