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배우 최대훈과의 첫 만남은 지극히 사적인 호기심이었다. ‘육룡이 나르샤’의 조말생과 전혀 다른 얼굴로 ‘의문의 일승’에 등장한 모습에서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고’라는 의문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최근 종영한 드라마 ‘괴물’을 통해 3년만에 최대훈을 재회했다. 시간이 흐른 만큼 배우 최대훈은 그때와는 달랐다. 좀 더 대중에게 친숙한 배우가 됐고 드라마에서 좀 더 비중 있는 캐릭터를 맡는 위치가 됐다. 그럼에도 최대훈에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괴물’에서 박정제 역을 맡았던 최대훈은 드라마를 떠나 보내는 것에 대해 “시원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시원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아쉽고, 또 그립고 보내기 싫은 감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최대훈은 “이젠 보내줘야 한다”고 했다. 최대훈의 이러한 감정은 어쩌면 당연하다. 드라마 ‘괴물’은 연기하면 내로라 하는 배우들이 모두 모여 연기 구멍을 찾을 수 없고 탄탄한 대본으로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았기 때문일 터.
최대훈 역시 시청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더구나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박성재, ‘악의 꽃’ 이우철, ‘사랑의 불시착’ 윤세준 등 최근 그가 연기한 캐릭터와는 또 다른 결의 인물로 시청자 앞에 섰다. 최대훈은 이동식(신하균 분)의 죽마고우이자 경기도 시의원 도해원(길해연 분)의 아들인 문주 경찰서 수사 지원팀 박정제를 때로는 선한 얼굴로, 때로는 섬뜩한 분위기로 연기해 드라마 분위기에 힘을 실었다.
박정제는 불확실한 기억 때문에 불안에 떠는 인물이다. 21년 전 진실에 다가설수록 혼란과 고통이 동반된 복잡미묘한 감정이 폭발한다. 친구에 대한 죄책감, 엄마 도해원(길해원 분)에 대한 원망 등 다양한 감정이 한데 뒤섞여 정신적으로 불안하기에 여린 면모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최대훈은 대본에 묘사된 박정제를 보고 걱정을 했단다. 그는 “묘사된 그대로 이야기하면 하얗고 키도 크고 여리여리하게 생긴 외형에 미소마저 달콤하지만 상처가 있는 사람이다”며 “하지만 나는 까맣고 덩치가 크다. 그러다 보니 캐릭터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심나영 감독이 자신을 믿고 베팅을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괴물' 최대훈 인터뷰. 사진/에이스팩토리
3년 전에도 최대훈은 모든 기회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당시 그는 다시 태어나면 배우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배우가 되기까지 너무 많은 행운 같은 기회가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단다. 하여 다시 태어나도 그 기회가 다시 자신에게 오지 않을 것이란 것. 그렇기에 그 기회를 준 이들의 믿음을 배신할 수 없기에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한다고. 심나영 감독이 자신을 믿어준 만큼 최대훈은 열심을 다했고 그 결과물을 내놓았다. 그렇기에 최대훈이 이야기한 “여전히 카메라 앞에 서면 부담이 되고 보이지 않는 올가미 같은 무언가를 느낀다”는 말이 이해가 됐다. 그는 믿어 주는 이들에 대한 신뢰 때문에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최대훈은 심감독에게 처음 정제를 선보일 때 확답을 듣고 싶었단다. 그는 “정제 자체가 기억을 잃은 캐릭터다. 그 부분에 대해 표현을 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다”며 “처음 정제를 선보일 때 감독님이 생각했던 방향성이 맞는지, 이런 연기 톤으로 가도 무리가 없는지 확인 받고 싶었다”고 했다.
그만큼 정제라는 인물은 그간 최대훈이 연기한 어떤 인물보다 난이도가 높았고 인물 자체가 가진 불안감이 컸다. 최대훈은 “정제라는 인물의 속내를 알기 힘들었다. 그를 파악하기에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불안감을 배우 신하균을 만나서 내려놨단다. 그는 “하균 형님이 계속 ‘왜 그러지?’, ‘난 왜 그런거야?’라고 물어봤다”며 “그런 물음이 배우들이 함께 정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고 했다. 이런 배려가 편안하게 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연기를 모니터링 하는 하균 형님에게 짓궂게 ‘형님도 연기하고 아쉬운 게 있냐’고 물어 봤다. ‘만족하는 배우가 몇이나 되겠냐’고 하더라”며 “연기를 소중하게, 성심성의껏 대하는 사람이라 너무 좋았다. 권의적이지도 보수적이지도 않고 친구처럼 대해줬기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괴물' 최대훈 인터뷰. 사진/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JTBC스튜디오
매 작품마다 완벽하다 할 만큼 연기 변신을 하는 그다. 최대훈은 단지 텍스트가 이끄는 대로 갔을 뿐이라고 자기를 낮췄다. 그는 “제 능력이나 역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의 기준에 있어서 입체적인 캐릭터인지, 얼마나 다른 인물과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는지, 혹은 매력적인 사연이 있는지를 주로 본다고 했다.
그리고 최대훈은 자신이 여전히 가야할 길이 먼 배우라고 했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란다. 그러면서 그는 “나를 선택해주고 불러준다면 감사한 입장에 가깝다”고 했다. 그렇기에 ‘괴물’에 자신을 불러줄 때 너무 감사했다고 했다. 그는 “선택의 권한이 많더라도 당연히 해야할 작품. 대본을 보고 내가 매력을 느낀 기준에 부합되는 대본이었다”며 “정말 시켜주는 거냐고 했다. 그런데 결과물도 너무 좋아서 행복하고 감사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더구나 최대훈에게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제57회 백상예술대상 TV 남자조연상 후보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최대훈은 꿈만 같다고 했다. 그는 “백상예술대상에 앉아 있어도 체감이 안 될 것 같다”며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했다. 최대훈은 시청자들의 관심, 남자조연상 후보 등 이러한 일들이 살면서 우울하고 기운 빠질 때 힘내라고 준 누군가의 선물 같단다. 그렇기에 그는 누구보다 이어 나가기가 어렵고 더 어려운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에 최대훈은 ‘경거망동하지 말자’라고 스스로를 차분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주변의 반응에도 여전한 최대훈이다. 드라마가 끝이 났음에도 여전히 ‘괴물’을 복습 중이란다. 꼭 해보고 싶은 ‘괴물’ 속 캐릭터를 묻는 질문에 최대훈은 무심결에 ‘복습’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그는 “어제도 잠들기 전 복습하는데 유연이가 벽에서 나오는 장면에서 하균 형님의 연기한 걸 보면서 복습했다”며 “나라면 어떻게 연기를 했을지 궁금했는데 그 때문인지 힘든 숙제일 것 같지만 동식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캐릭터의 감정에 호기심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였다.
'괴물' 최대훈 인터뷰. 사진/에이스팩토리
3년 전만해도 최대훈은 자신의 기능을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다면서 누군가의 조력자라고 했다. 드라마에 주인공만 있는 게 아니라 기능적으로 반드시 있어야 할 조력자들이 필요하기에 최대훈은 ‘화려한 조력자’가 자신의 기능이라고 스스로를 평했다. 그런 그가 주인공인 이동식의 감정에 호기심을 드러낸 것. 이런 모습이 조력자에서 캐릭터 자체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3년과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3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같은 단어를 쓰며 자신의 기능을 설명하는 그다. 그리고 “아직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물론 최대훈은 시간이 지난 만큼 달라지긴 했단다. 그게 자신의 마음가짐이 아닌 자신에게 믿음을 주는 이들의 믿음의 크기가 커진 것. 그러다 보니 더 비중이 있는 캐릭터를 맡게 됐단다. 그는 “비중이 커진 만큼 좋은 조력자가 되려면 좋은 배우가 되야 한다. 그렇기에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더 깊이 들어가고 캐릭터를 탐닉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전히 배우라는 말이 듣기 좋다는 그다. 이 역시도 바꾸지 않았다. 식상할지 모른다며 신뢰감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는 말까지도 여전하다. 지금까지 그가 했던 말들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최대훈이라는 배우의 정체성은 믿음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누군가 준 기회에 최대훈은 믿음으로 보답을 하고 그 믿음이 또 다른 기회로 돌아온다. 그렇게 믿음의 기회가 쌓여 느리지만 더 높은 계단에 최대훈을 올려 놓은 것이다. 그렇기에 최대훈은 신뢰감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 바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믿음’, 이것이 자신의 정체성이자 배우로서의 신념이기에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일 터.
'괴물' 최대훈 인터뷰. 사진/에이스팩토리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