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한 국가의 법원이 타국의 주권 행위를 재판할 수 없다'는 '국가면제' 수용여부에 결과가 갈렸다.
그런데 ‘국가면제’란 무엇인가?
1. 법과 국제법의 차이
법은 ‘도덕률의 최소한’(한 사회의 구성원이 공감하는 도덕 가운데 강제성을 두어서라도 반드시 지키게 해야 하는 것의 부분집합)으로 소속집단(국가는 국법, 지방은 지방법 혹은 조례)의 권력에 의해 강제되는 규범을 말한다.
그중 국제법은 ‘국제사회 관계를 규율하는 법’으로, 국가 간의 협의에 따라 국가 간의 권리, 의무에 대해 규정한 국제 사회의 법이다.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법은 국가 입법부의 입법활동 혹은 국가원수의 정치행위 등에 따라 '제정'되지만, 국제법은 '국가들 간의 약속(조약)'이나 '국가들이 과거부터 지켜온 것들(관습)'에 따라 ‘형성’된다.
결정적으로 법은 '강제성'이 있지만 국제법은 '협의'에 따라 효력이 발생해 강제성이 사실상 없다. 위반시 정치적 부담을 안는 것이 대부분이다.
국가 내부에서 개인과 개인, 정부와 개인의 분쟁이 생기면 법대로 해결하면 된다. 그에 따르지 않으면 사법부가 결정을 내리고 행정부가 그 결과를 집행한다.
그런데 중앙정부가 없는 국제사회에서 국가와 국가, 국가와 개인의 분쟁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국제법을 지키지 않으면 누가 처벌을 할까? 결국 한 국가의 위법 행위를 다른 국가들이 나서서 단죄해야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2. 국제법의 시작과 국가면제
현대 국제법의 시작은 통상 유럽의 종교전쟁 '30년 전쟁(1618-1648)'의 종결로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본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일방적으로 윽박지르는 것이 아닌, 각 국가들이 상호 동등한 '국가주권'을 인정하고 협의를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제한하며 특정 질서를 창출했다.
즉 국제사회의 질서(법)을 창출한 것은 각 국가이며, 이를 준수할 책임을 지닌 것도 각 국가가 됐다. 국제법상 모든 국가는 평등하며, 자국의 주권이 보호받기 위해서는 타국의 주권도 존중해야한다.
더 나아가 타국에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한 국가의 주권적 행위를 다른 국가가 판단하는 것은 주권침해가 된다. '국가면제'의 시작인 것이다.
3. 국가면제와 개인의 권리
고전적인 국제법 논리에서 개인(국민)은 국가에 귀속되는 존재다. 국가가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해야 개인의 권리가 보호되는 것이었다. 외교적 보호권을 받지 못하는 무국적자 혹은 난민과 그 위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달라졌다. 국가를 넘나들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인이 등장했고, '보편적 인권'의 중요성도 커졌다. 그래서 국가면제의 범위와 절대성을 좁히는 '제한면제주의'가 점점 힘을 얻고 있다.
4.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 양국은 국교 정상화와 전후 보상문제의 해결을 위해 ‘한일기본조약’을 맺었다.
그중 문제가 되는 부분은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는 대목이다.
일본은 이 대목을 들어 위안부 문제도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당시 일본정부가 박정희정부에 수억달러의 보상금을 줬고, 이를 피해자들에게 돌려줘야했는데, 그것을 안했다는 논리다.
그러나 명시적인 전쟁범죄와 일제강점으로 인한 개인권리 포기 조항이 존재하지 않기에, 일본 정부와 군대 등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일본군 위안부, 강제노동)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특히 국가가 개입한 대규모 인권침해 행위는 ‘국제인권법’상 분명한 강행규범 위반이라는 것이 최근의 해석이다. 이를 인정한 것이 1차 재판이었고, 이를 인정하지 않고 고전적인 '국가면제' 논리를 적용한 것이 2차 재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