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였다. 여당의 대선 주자들은 경남 봉하마을로 달려가 '노무현 정신 계승'을 부르짖었다. 그렇게 다들 노무현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신'은 무엇인가. 모두가 '노무현 정신'에 국민 행복을 얹고, 통합의 정치를 잇대어 말하지만 '노무현 정신'이 어떤 것인지 밝히는 사람은 없다.
'노무현 정신'의 정수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바보'다. 아사리판과 다름없는 정치판에서 바보가 되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정치 생명을 놓는 일과 다름없지만, 바보 노무현은 그렇게 했고, 스스로를 낮춰서 결국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시민의 힘을 믿었고, 그 힘으로 한 자릿수 지지율에서 '대세론'을 뒤집으며 시민 참여 정치를 온몸으로 구현했다.
바보는 이미 완성형이었다. 편한 세무변호사 생활을 접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고, 정치권에 들어온 뒤에는 3당 합당을 거부했고, 민주당 간판으로 빨갱이 소리를 들으면서도 부산에서 국회의원과 시장에 출마해 낙선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바보를 알아봤고, 진흙탕에서 건져내 소중히 닦아 빛을 내었다. 바보는 그렇게 빛을 얻었다.
정신을 드러내는 것, 누군가의 뜻을 잇는 것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현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정신을 가시적인 움직임으로 드러내야 계승이고, 받드는 것이다. 작금의 더불어민주당에는 노무현과 같은 바보가 있나. 보이지 않는다. 특권을 내려놓고, 통렬한 반성과 솔직함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대선 주자는 없다. 대신 노무현의 성공 신화만을 좇아 자신들이 모두 노무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난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인천 경선의 한 장면을 기억한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장인의 좌익 활동을 문제 삼은 색깔론에는 "여러분이 그런 아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신다면 대통령 후보 그만두겠다"라고 했고, 언론국유화 프레임 음모론에는 "언론에 고개 숙이고 비굴하게 굴복하는 정치인은 되지 않겠다"라고 맞받았다. 그리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시라"라고 일갈했다.
소위 '밤의 대통령'에 대들어서는 편안한 정치는 불가능하다. 노 전 대통령은 이를 또 바보스럽게 거부하고 들이받았다. 현재의 민주당 대선 주자 가운데 노무현은 없다. 시대의 거친 파도 속를 고고히 바보처럼 헤쳐나가는 사람이 없다. 서로를 겨냥한 칼부림 같은 언설들만 있고, '기본' '복지' '개혁' '공정' 등의 화려한 수사만 넘쳐난다. 솔직한 반성과 고백, 시민을 향한 읍소가 없다. 무엇보다 낮은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더디다. 정치에서 이런 행동은 바보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보가 되는 데 자격증은 필요 없다. 그저 움직이면 된다.
지난 2019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서 가수 정태춘이 추모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장원 기자 moon334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