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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훼손된 양산 읍성 성벽 하단 최초 확인
한국문화재재단 발굴…작은 돌 위에 50∼120㎝ 커다란 돌 올려
입력 : 2021-07-19 오후 3:20:26
[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양산 읍성의 기저부가 최초로 발견됐다.
 
19일 한국문화재재단은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발굴 조사하고 있는 '양산 중부동 268번지 소규모 건축 건립 예정지'에서 양산 읍성 성벽 기저부를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종섭 한국문화재재단 조사 연구3팀 팀장은 "현재 양산 읍성은 대부분 허물어졌지만, 이번 소규모 발굴조사에서 일제강점기 지적도상에 표시된 성(城)과 일치하는 성벽 기저부가 그대로 잔존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며 "이는 향후 양산 읍성의 남아 있는 부분을 포함하여 전체 위치와 흔적을 찾고,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산 읍성의 축조와 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1492년(성종23년) '이달에 경상도 양산 읍성을 쌓았는데, 높이가 11척, 둘레가 3710척이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과 1878년 '양산군읍지'에 있는 기록과 조선 후기 각종 지도를 통해 3대 문(동·서·북문)과 성내에 쌍벽류, 객사, 동헌 등 건물이 온전히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1913년 일제가 양산 지적도를 작성할 당시만 해도 읍성 전체 둘레가 뚜렷이 그려져 있다. 길이는 약 1500m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많은 읍성들처럼 일제강점기에 양산 읍성도 신작로 개설과 매립 공사로 광복이 될 때까지 대부분 허물어졌다. 현재는 6~7개소에 부분적인 성터의 흔적만 남아있다고 양산 향토사학자들이 전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읍성 체성부 지대석과 채움석 등 성벽 기저부만 확인됐다. 서쪽은 모두 유실됐고 내벽석쪽 가장자리와 상부의 벽체도 유실됐다.
 
확인된 전체 규모는 길이 1436㎝, 너비 235~270㎝, 높이 64㎝ 정도다. 방향은 북동-남서향이다. 지대석은 부지의 서쪽에서만 일부 확인되는데, 방향은 거의동~서향이다. 남쪽 경계 밖으로 연장된다.
 
지대석은 아래에 10~30㎝ 정도의 깬 돌을 깔아 지반을 견고히 한 후, 그 위에 크기 50~120㎝ 정도의 대형 석재로 상면을 평평하고 견고하게 축조했다. 2열로 길이는 580㎝, 너비는 120㎝로 확인됐다. 읍성 외벽의 지대석으로 추정된다. 동쪽으로는 성벽 내벽 쪽으로 채웠던 50㎝의 깬 돌들이 2~3단 정도 확인됐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기와도 나왔다. 서쪽 지정석 내부에서 조선 시대로 추정되는 10㎝ 내외의 암키와 편들이 소량 출토됐다. '田'자 명문이 있다.
 
이번에 확인된 읍성 기저부에서 북동쪽으로 약 120m정도 떨어진 중부동 181번지에는 읍성 내벽 쪽 성벽(길이 15m, 높이 2m)이 있다. 이는 가장 잘 남아있는 부분이다. 두 성벽 자리는 일제강점기 지적도상에 표시된 성의 위치와 일치한다.
 
양산읍성 기저부 전경. 사진/뉴시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
 
조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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