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장윤서 기자] 정세균 후보가 끝내 경선 하차를 택했다. 지금까지의 민주당 경선 판세를 감안할 때, 더 이상의 고집보다는 명예로운 퇴장을 선택해야 한다는 참모진의 의견도 고려됐다. 당대표와 국회의장, 국무총리 등 유일무이한 정치 이력을 자랑하고도 그는 끝내 이재명 대세론을 잠재우지 못했다.
정 후보는 13일 오후 국회에서 예정에 없던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부족한 저를 오랫동안 성원해주신 많은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며 "저는 이제 평당원으로 돌아가 하나되는 민주당,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혔다. 관심을 모았던 이재명, 이낙연 후보 등에 대한 지지는 없었다. 정권재창출을 위해 밀알이 되겠다는 의지라고 캠프 관계자는 설명했다.
정 후보는 전날 강원 경선 및 1차 슈퍼위크 결과를 보고 크게 낙담했다고 한다. 앞서 강원도 터줏대감과도 같은 이광재 의원과 후보단일화를 이룬 터라 강원을 지역 순회경선 반전의 계기로 삼았던 터다. '강원을 이기고 호남으로 가면 해볼 수 있다'는 게 마지막 기대였다. 일반국민이 대거 참여한 1차 슈퍼위크 결과도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고심을 거듭하던 정 후보는 이날 오후 3시경 캠프에서 의원단급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는 약1시간 가량 비공개로 진행됐다. 회의실 안에서는 정 후보의 농담에 참석자들의 웃는 소리가 들렸고, "대통령 정세균" 이라는 구호가 나오는 등 무겁지 않게 진행됐다. 정 후보는 회의를 마친 직후 곧장 국회로 이동했고, 캠프 관계자들은 서로 "그도안 수고했다"며 악수를 나눴다.
사실상 취약점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던 정 후보의 경선 중도 사퇴는 여의도 시선과 일반국민 시선 간 차이를 보여주는 지표가 됐다는 분석이다. 정 후보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을 잇는 적통에, 대표적 친노 인사인 이광재 의원 지지까지 등에 업었다. 당대표 시절 정비했던 튼튼한 조직과 함께 호남 출신이라는 강점도 보유했다. 호남을 버리고 종로에 도전하는 등 정 후보 스스로 강조했던 '선당후사'도 몸소 실천했다. 여기에다 기업인 출신으로 경제통이라는 정책적 강점마저 내세웠다.
하지만 당원과 국민은 시원한 '사이다' 발언에 실천을 강점으로 내세운 이재명 후보에 열광했고, 정 후보는 이를 바라만 봐야 했다. 정 후보 캠프 한 핵심 관계자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여의도 시선에만 매몰됐다"며 "기존 여의도 정치에 대한 국민적 혐오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 후보로서는 이재명·이낙연 후보의 양강구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 지역 순회 연패를 가져온 것 같다"며 "성격도 합리적이고 온화하다 보니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이낙연 후보와 지지층이 겹치는 등 추가 동력에도 한계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정 후보의 사퇴가 향후 민주당 경선 판세에 별다른 영향을 주진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 후보 지지율이 낮았다는 점을 비춰볼 때 판세가 출렁일 이유는 없다"며 "다만 호남 지지자들이 이낙연 후보 지지를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 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후보와 이낙연 후보가 같은 호남권에다, 친문 진영 표심에 기댔다는 점에서 이낙연 후보에게도 지지율이 옮겨 갈 가능성도 있으나 이재명 대세론이 워낙 확고해 큰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신 교수의 설명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정 후보가 호남 경선을 앞두고 중도 사퇴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이낙연 후보를 배려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 직접적인 지지는 없을 전망이다. 정 후보 역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정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이 타후보 지지선언 여부에 대해 묻자 "저는 일관되게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경선 중도 사퇴를 공식 선언했다. 사진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사퇴를 선언한 정세균 전 총리가 13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경선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이동하며 파이팅을 외치는 캠프 소속 의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하고 있는 모습. 사진/공동취재사진단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