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뽑을 사람 하나 없습니데이. 그래도 문재인 정권 심판할라믄 대구는 똘똘 뭉치가 윤석열 밀 겁니데이. 보소. 내 말이 틀리나."
윤석열 후보가 국민의힘 최종 대선주자로 선출된 5일,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대구 최대의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을 찾았다. 윤 후보에게 쏠리는 관심을 분산시키고자 보수의 심장부로 들어갔다. 경북 안동 출신이라는 지역 연고도 강조했다. 시장에는 그를 보기 위한 구름 인파가 몰려들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5일과 6일 곁에서 지켜본 대구의 속마음은 싸늘했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생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부동산 폭등에 물가도 치솟으면서 대구 바닥 민심은 집권여당인 민주당에 등을 돌린 게 확실해 보였다. 시민들은 "뽑을 사람 없다", "대선이 개판이 됐다" 등 여야를 싸잡아 비난하면서도 정권 심판에 대한 결기만은 하나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5일 오후 민생탐방을 위해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찾아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선출 당일 서문시장 찾은 이재명…환호와 욕설 아수라장
이 후보가 서문시장에 도착한 건 오후 4시를 넘겨서였다. 이 후보가 모습을 드러내자 순식간에 인파가 몰리면서 시장은 걷기 어려울 정도로 혼잡해졌다.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는가 하면, 지지자들은 이 후보에게 꽃다발을 건네주면서 환영했다. 일부는 사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재명은 합니다", "대통령 이재명"을 연호했다.
그러자 이 후보 근처에 있던 서문시장 일부 상인들은 지지자들이 "이재명 대통령"을 외칠 때에 맞춰 "이재명 개XX"라고 맞불을 놨다. 격분한 양쪽이 각기 목소리를 높이면서 상황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이 후보는 개의치 않고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손을 흔들며 답례했다.
대다수의 시장 상인들은 이 후보를 지켜보며 혀를 찼다. 개량한복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대구에서 이재명을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가 이 후보가 배척하는 이유로 가장 먼저 꺼낸 것은 '대장동 의혹'이었다. 그는 "교묘하게 말을 바꾼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며 "국민을 바보로 안다"고 했다.
또 다른 상인은 "문재인 정권에서 부동산 폭등시켜 놔서 내 아들은 집 하나 사기조차 엄두를 못 낸다. 대구 물가도 이만큼 올려 놓은 게 문재인 정권이고 민주당인데 좋게 보이겠냐"고 했다. 떡집을 운영하는 다른 상인도 "이번에는 대구가 똘똘 뭉쳐서 문재인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며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도 대구는 무조건 국민의힘을 밀어야 한다"고 했다.
일부 상인들과 시민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서문시장 오지 말라고 하면 안 와야지 개XX", "헬멧 안 쓰고 오면 머리 깨질 거라 했는데 그래도 안 깨졌네" 등과 같은 날선 반응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의 싸늘한 시선은 이 후보가 서문시장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5일 오후 민생탐방을 위해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찾아 지지자에게 꽃다발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선후보 확정 소식에 '잔칫집 분위기'…"오직 정권교체"
이보다 앞선 오후 3시경, 윤석열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윤 후보의 선출 소식이 뉴스 속보를 통해 전해지자, 옹기종기 TV 앞에 모여있던 서문시장 상인들은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침구를 판매하는 한 상인은 "이제 대구는 윤석열 미는 일만 남았다"고 기뻐했다.
대구 시민들은 윤 후보가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는 '고발사주 의혹'에 대해 "어려워서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건어물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들어보긴 했는데, 그런 복잡한 것까지 어떻게 다 알겠느냐"고 했다. 이 상인은 "윤 후보가 '파볼테면 파보라'고 하던데 그런 배포도 마음에 들고, 그렇게 당당하게 나오는데 뭐가 있겠느냐"며 윤 후보를 굳게 믿었다. 바로 옆 상인도 "윤석열 잡으려고 (문재인정부가)하는 건데, 속아 넘어갈 사람 없다"고 단정 지었다.
걱정도 있었다. 윤 후보가 '정치신인'이라는 것. 대구 토박이로, 택시 운전을 하는 정모씨(50대·남성)는 "국정운영 경험이 없어서 걱정이다. 운전도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 해야지"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번 대선 개판이다. 뽑을 사람 없다"며 "안 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데 대선 이후에 나라가 더 개판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윤 후보를 지지한다는 한 시민도 "초짜한테 나라를 맡기는 게 아닐까 다들 걱정한다"면서 "국민의힘이 (윤 후보를)잘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에 선출된 윤석열 후보가 지난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제2차 전당대회를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북 안동 출신도 외면…"이재명, 대구 출신이라 해도 민주당은 안돼"
이 후보는 경북 안동 출신으로, 지역 연고만 놓고 보면 윤 후보보다 가깝다. 하지만 대구 시민들은 이 후보가 안동 출신이라는 점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알아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당이 우선이었다.
서문시장을 찾은 한 시민은 "이 후보가 안동 출신이었냐"고 물으며 "안동 출신인데 민주당 후보로 나왔냐"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안동 출신이라 해도, 대구는 민주당은 안 뽑는다"고 잘라 말했다. 시장 상인들과 시민들 대다수도 "안동 출신이 아니라 대구 출신이라 해도 박수 받지 못한다"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대구 최대의 전통시장인 서문시장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2030, 대선주자들에 시큰둥…홍준표·이재명 추진력은 높이 사
이 후보는 서문시장을 방문하기 앞서 경북대학교를 찾아 강연과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민주당에게 등을 돌린 2030 청년세대에게 가깝게 다가가는 동시에 기본금융·기본주택 등 정책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청년들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했다. 경북대에 재학 중인 경모씨(23·남성)씨는 "딱히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며 "이 후보는 가족 간의 싸움, 대장동 의혹 등 도덕성에 문제가 있고, 윤 후보는 배우자 문제나 장모 문제가 있어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대구가 보수의 심장이고 부모님한테 받은 영향도 있어서 뽑을 후보가 없다면, 국민의힘 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실질적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추진력을 가진 정치인을 원했다. 홍준표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한다는 신모씨(25·남성)는 "이제는 잘 산다는 기대도 버렸다. 공무원이 안정적이라고 해서 다들 공무원 공부하는데, 공무원을 하더라도 평생 집도 못 사는 세상이 됐다. 희망이 없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는 "이 후보도 홍 후보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추진력이 있다"며 "말로만 그칠 게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 정치인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임모씨(25·남성)도 강력한 추진력을 원했다. 그는 "요즘 2030 세대는 취업난뿐만 아니라 출산율 저하도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했다. 원치 않아서가 아니라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없는 환경의 탓이 컸다. 그만큼 청년들의 좌절이 깊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임씨는 "태어나서,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는 등의 단계가 있는데, 그런 단계를 밟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하다"며 "지금까지 행보를 볼 때 홍 후보와 이 후보가 가장 적합해 보인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5일 오후 대구시 북구 산격동 경북대학교 인문학진흥관에서 열리는 ‘청년이 묻고 이재명이 답한다’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 이 후보의 대구 방문은 후보 확정 이후 처음이다. 사진/뉴시스
대구=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