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증가에 따른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탄소중립의 필요성에 관한 뉴스를 누구나 한번쯤 언론을 통해 접해 봤을 것이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배출한 만큼의 탄소를 흡수하거나 제거해 순 배출량이 ‘0’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온실가스를 줄여 지구 온난화로 수반되는 전지구적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고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탄소중립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2020년 12월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지난 5월 대통령 직속기구인 2050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을 통해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일환으로 지난 10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및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국무회의에서 최종 확정됐다. 2050년 국내 탄소중립을 실현하고 그 중간 목표로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40%를 감축한다는 목표다.
탄소중립이라는 대전환은 모든 산업분야에 새로운 정책과 환경 규제 규범을 요구하고 있다. 필자가 속한 선박해양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2018년 UN 산하 국제해사기구(IMO)에서는 2050년까지 국제해운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 대비 50% 감축한다는 목표를 채택하고 조선 해운분야의 탈탄소화 바람을 주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탈탄소화는 조선과 해운분야에서도 발등의 불이다. 국제해운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 배출량의 대략 3% 수준에 불과하지만, 세계 수출입 물동량의 95%가 선박으로 운송되고 있어 조선·해운분야의 탈탄소화 관련 글로벌 규제가 미치는 파급력은 매우 크다.
IMO는 2050년 국제해운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새로 건조되는 선박의 경우 2030년부터 에너지효율설계지수(EEDI)를 2008년 대비 40% 이상, 2050년부터 최소 50% 이상 개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 2023년부터 현재 운항중인 국제항해선박에 대해서도 에너지효율을 강화하는 기술적 규제인 현존선 에너지효율지수(EEXI)와 운항적 조치인 탄소집약도지수(CII) 도입을 발표했다. 앞으로 탄소배출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선박을 설계, 건조할 수 없는 조선소는 더 이상 존립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 1위 조선강국인 우리나라가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해운분야 탈탄소화를 위해서는 기존의 탄소기반 선박 화석연료체계 자체를 바꿔야만 한다. 우리나라 조선업계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LNG 추진선박의 경우도 기존의 선박 연료유 대비 20% 정도의 탄소배출 저감 효과가 있을 뿐이다. 이에 계속 강화되고 있는 탄소배출 규제 대응을 위해서는 조속히 수소·암모니아와 같은 무탄소 연료를 활용하는 새로운 추진시스템을 개발, 선박에 적용해야 한다. 또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선박 추진에 활용하는 것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국제 항해에서 컨테이너선·유조선 등 대형 선박의 경우 최대 수십 MW(메가와트)의 추진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작은 출력을 사용하는 자동차 등에 적용되는 현재의 배터리, 연료전지 기술을 대형 선박에 바로 적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에 기존 내연기관의 고출력과 화석연료의 경제성을 유지하면서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선박에서 배출되는 탄소자체를 포집, 처리하는 선상탄소포집시스템(Onboard CCS)을 적용하거나 기존 화석연료에 바이오연료를 첨가하는 방법, 수소·암모니아를 함께 연소하는 혼소 기술도 징검다리 기술로 활용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저탄소 선박기술의 대부분은 현재 유럽 등 선진국 중심으로 개발·실증되고 있다. 국내 조선해운업계의 경우 장기간의 불황을 막 벗어나고 있는 단계라서 자체적으로 저탄소·탈탄소화 규제대응을 위한 신기술을 연구개발·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지 않은 실정이다. 지난 10년간 8만명 이상 고용 인력이 줄어든 조선산업계도 마찬가지로 연구개발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 50년간 국가 경제를 이끌어온 우리나라 조선·해운업계가 앞으로도 새로운 100년의 미래산업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선박 탈탄소화 기술의 선도적 개발과 보급이 절실하다. 이에 우리나라는 산·학·연·관 모두가 역량을 모아 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상호 협력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특히 조선해운업의 특성상 새로운 기술이 실용화되고 선주(Ship Owner)의 선택을 받는 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신기술을 시험 평가할 수 있는 기반 구축과 운용실적 확보가 필수적이지만 단일 기업이나 기관이 이를 모두 부담하기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책연구과제로 개발한 신기술을 탑재한 선박의 실증사업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기업, 연구기관, 선급 등은 공동협력으로 실증을 수행해 얻어진 결과들을 바탕으로 정부와 함께 법제도 개선과 국제 표준화를 위한 선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지난 2020년 ‘환경친화적 선박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지난 6월 2540억원 규모의 ‘친환경선박 전주기 혁신기술 개발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조선 해운분야의 탄소중립 실현에 속도를 내는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선박해양 분야의 유일한 정부출연연구기관인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도 정부·산업계와 함께 친환경선박 기술개발과 실증을 위한 주도적 역할을 통해 해양 탄소중립 실현과 미래 조선해운 산업발전에 기여할 것을 다짐한다.
김부기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