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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창문 없는 방
입력 : 2022-01-10 오전 6:00:00
류광호 작가의 소설 ‘창문 없는 방’에서 청년 무신은 영등포 타임스퀘어 인근의 한 고시원에 산다. 방 안은 두 걸음도 옮길 수 없을 정도로 비좁고, 창문이 없어 엷은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가족, 친구 관계가 끊기면서 무신은 희망 없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지만 출구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창문없는 방에 산다는 건 단순히 경제적 궁핍을 넘어 세상과 단절된 무신의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무신은 자신의 방을 ‘관’이라 부른다.
 
일명 ‘지옥고’라 불리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중에서도 고시원을 가장 열악하다고 꼽는다. 고시원 중 절반 이상은 전용면적 7㎡도 안 되고, 창문이 설치된 방도 절반이 안 된다. 고시원 안에서도 창문이 없이 비좁은 방을 ‘먹방’이라 한다. 먹방은 월세가 가장 싸다.
 
이름이 고시원라고 고시생들이 사는 건 아니다. 사법시험이 로스쿨로 바뀌던 시기를 즈음해 청년들은 하나 둘 고시원을 비웠다. 소설 속 무신이 그랬듯 고시원에 산다는 건 더 이상 신분 상승의 희망을 품지 못한다. 
 
빈 자리는 갈 곳 없는 중장년 남성들이 채웠다. 서울시 2020년 고시원 실태조사에서 40대 이상이 55.3%에 달한다. 미혼비율이 67.5%나 되며, 월 평균 가구소득이 100만원도 벌지 못하는 가구가 37.5%나 된다. 대부분 이웃과 관계를 맺지 않으며 가족·친척과도 연락을 하지 않는다.
 
실제 2018년 7명이 죽고 11명이 다친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사고의 사상자는 모두 40대 이상의 일용직 노동자였다. 당시 화재 원인으로 스프링클러 미설치와 함께 먹방이 주 원인으로 꼽혔다. 사망자는 대부분 먹방 거주자였다.
 
결국, 고시원, 그리고 먹방이라는 특이한 주거형태는 현 시대 가장 주거취약계층이 누구인가를 보여준다. 그들은 단순히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까지 차단당한 채 생활하며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각종 안전사고 위험에까지 노출됐다.
 
그나마 국일고시원 화재 사고 이후 주거권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우리는 집을 단순히 재산으로 여기는 풍조에서 재산 증식을 이유로 건축법의 사각지대나 맹점 등을 이용해 지옥고나 먹방을 양산하는 것을 방치해왔다. 가난한 사람도 최소한의 집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에는 눈 감아왔다.
 
2019년 서울시는 노후고시원 대책을 내놓았다.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최소면적 기준과 창문 의무 설치, 고시원 리모델링형 사회주택 공급 등 크게 세 가지다.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한 결과 작년 4월 신림동의 한 고시원에서 불이 났지만 큰 피해없이 조기 진화됐다.
 
당장 급한 불을 껐다면, 이제 제도적으로 먹방을 못 만들게 막아야 한다. 서울시는 건축 조례를 개정해 올 7월부터 신·증축하는 고시원에 방 크기를 최소 7㎡ 이상으로 규정하고, 창문을 의무적으로 설치해 바깥과 통하도록 했다. 사고 후 4년여만이다.
 
여기서 멈출 경우 고시원 먹방은 사라지겠지만, 주거취약계층의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아 또다른 형태의 먹방이 탄생할 공산이 크다.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주거 대안이 뒤따라야 하지만, 리모델링형 사회주택은 2년째 멈춘 상태다.
 
가장 큰 이유는 사업성 악화다. 건물 노후도에 따라 리모델링 비용이 천차만별인데 모든 부담을 사업자가 져야 한다. 이럴 경우 보증금이나 임대료가 올라가 입주여건이 안 좋아지고 공실률이 높아진다. 보다 정교한 사업구조를 갖추지 못한 책임이 크다.
 
창문없는 방을 없앤다니 임대료가 오를까봐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창문이 있는 방으로 가면 적어도 5만원을 더 줘야 하고, 면적도 1평 늘어날때마다 5만원 이상 뛴다. 임대주택은 자격이 되는지도 모르고, 갈 곳도 마땅치 않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도시라면 어떤게 맞을까. 주거취약계층을 창문없는 방에 꽁꽁 숨겨놓아야하나, 아니면 주거취약계층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도시가 돼야 할까. 오늘도 추운 밤을 창문없는 방에서 보낼 누군가에게 안녕을 기원한다. 
 
박용준 공동체팀장
박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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