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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정치는 마케팅?
입력 : 2022-03-29 오전 6:00:12
마케팅 입문 과목인 마케팅원론의 첫 시간에 주로 논의하는 주제는 마케팅의 의미를 우리 말로 푸는 것이다. 경영학 전공 중 유일하게 영어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분야가 마케팅이다. 이런 마케팅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시키기 위해 주변에서 마케팅 현상을 찾아 설명하고 마케팅의 우리 말 용어를 제시하는 과제를 부여하여 토론하는 것이다. 
 
마케팅을 처음 접해 생소한 학생들은 흥미롭고 독창적이며 의견을 내놓는데, 이번 학기에는 ‘정치도 마케팅이다’라는 답이 유별나게 많이 나왔다. 학기가 시작하는 3월 초에 실시된 20대 대선의 경합이 치열한 탓에 정치에 관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일 거다.  
 
일반적으로 마케팅은 민간 기업이 영리추구를 목표로 수행하는 판매활동으로 이해한다. 최근에는 마케팅의 활용범위가 비영리 분야로 확대돼 사회단체나 공공기관도 마케팅을 수행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정치도 마케팅으로 보다니, 의외이면서도 재미있다.
 
따지고 보면 정치와 마케팅에 유사점이 많다. 본질적으로 마케팅은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활동이다. 마찬가지로, 정치는 선거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기업은 돈이 필요하고 정치인은 권력을 원하는데 이 모든 것은 국민의 선택에 의해 주어진다.  
 
선택이란 경쟁이 있기에 발생한다. 경쟁이 없다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독점시장에서 마케팅이 필요 없듯이 독재국가에서는 정치가 소용없다. 따라서, 자유경쟁이 활성화되는 자본주의와 자유선거가 보장되는 민주주의에서 마케팅이 꽃을 피우는 것이다.
 
선택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들다. 소비자이건 유권자이건 사람의 선택 행동(choice behavior)은 수많은 요인에 영향을 받으므로 복잡하고 미묘하다. 이런 선택 행동을 분석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도록 유인하기 위해 마케팅과 정치에서 공통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기법에는 소비자 조사, 시장세분화, 브랜드 이미지 등 세 가지가 있다.  
 
고객지향적 마케팅에서 소비자 조사는 모든 의사결정의 출발점이요, 종착점이다. 현대 정치에서도 조사가 중요하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은 부분이 여론조사다. 선거 기간 동안 수많은 여론조사가 시행됐고 그 결과가 매일 매일 언론과 방송에서는 크게 다뤄졌다. 
 
전략적 차원에서 마케팅의 가장 중요한 기법으로 시장세분화를 꼽는다. 시장을 소비자의 성향에 따라 구분하고 중점적으로 공략할 표적 고객을 선정해 차별적인 마케팅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 시장세분화는 마케팅보다 정치가 더 뛰어나다. 마케팅에서는 모든 소비자를 고객으로 유치하려는 유혹에 빠져 세분화가 애매하고 표적 고객이 불분명해 마케팅의 초점이 분산돼 효력이 약화된다. 
 
정치에서는 다르다. 유권자의 분류기준이 명확하다. 지지층, 중도층, 반대층으로 구분하고 연령, 지역, 직업, 정치성향 등에 의해 세분화해 맞춤형으로 접근한다. 정치 선거에서 승리하는 불변의 법칙은 지지층을 강화하고 중도층을 우호적으로 전환하며 반대층을 중립화하거나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마케팅과 정치의 가장 큰 과제는 경쟁자와의 차별화인데, 최근에는 차별화 수단으로 제품보다 브랜드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소비자는 정보와 시간의 제약으로 다양한 제품의 장단점을 정확히 인지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 비교하고 선택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소비자는 제품의 실체보다 브랜드의 이미지에 의해 선택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브랜드 이미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거품을 키우고 진실을 호도해 소비자의 선택을 왜곡시키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마케팅을 남용하여 허접한 제품에 유명 브랜드를 붙이고 화려하게 포장해 대대적으로 광고함으로써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이런 폐단이 정치에서는 ‘네거티브’와 ‘포퓰리즘’이라는 이름으로 횡행한다. 마케팅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르지 않는 것처럼 정치에서도 소비자의 표를 얻기 위해 다른 정치인을 비방하고 과장 공약을 남발하는 것이다.  
 
마케팅과 정치가 다 같지는 않다. 가장 큰 차이점은 ‘승자독식’과 ‘갈라치기’에 있다. 마케팅에서는 적은 수의 소비자 선택을 받아도 생존할 수 있다. 반드시 모든 경쟁사를 이겨 1등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정치는 다르다. 선거에서는 한 표라도 더 받은 쪽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식의 논리가 존재한다. 대박과 쪽박의 극단적 승부를 걸고 죽기 살기로 싸운다. 당연히 협치를 할 수 없다. 반대편을 적으로 보는 시각에서 유권자도 내편 네편으로 갈라치기한다. 
 
이와 같은 대립적 구도가 바뀌어야 정치에서도 국민을 위한 진정한 마케팅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치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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