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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아, 문과!
입력 : 2022-04-08 오전 6:00:00
지금, ‘문송합니다’, ‘문과 침공’, ‘문과 불리’와 같은 말들이 미아처럼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이들이 현재의 문과가 처한 상황을 가장 자조적(自嘲的)으로 또한 가장 적확하게 서술하고 있는 어휘로 정착해 버린 느낌이다. ‘문송합니다’는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를 줄인 말로 낙담과 자조의 냄새를 짙게 풍긴다. ‘문과 침공’과 ‘문과 불리’는 2022학년도에 처음 도입된 문·이과 통합형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이과생이 대거 인문계에 교차 지원하여 합격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이런 어휘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문송합니다’에는 문과 출신들의 낮은 취업률을 반영한 슬픔이 배어 있고, ‘문과 침공’과 ‘문과 불리’에는 서울 주요대학의 인문계에 교차 지원한 이과생 비율이 무려 50%가 넘었다는 통계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연세대는 무려 70%에 가까운 합격자를 냈다고 하니, 이런 수치에 넘쳐날 문과 출신자들의 당혹함과 비애가 읽힌다. 아, 어찌 이런 지경까지 왔단 말인가. 수학을 못하면 대학에 갈 수 없다는 압박감이 그 어느 때보다 더해만 가니, 입시를 준비하는 문과생에게 봄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계절일 수밖에.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말들의 생명력이 일회성으로 그칠 것 같지 않다는 데에 있다. 올해 수능 역시 ‘문과 불리’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수학 선택과목에서 ‘미적분’을 선택하는 이과생이 주로 ‘확률과 통계’를 선택하는 문과생보다 표준점수가 높아지는 현상, 이것이 이과생들의 ‘문과 침공’의 핵심이다. 올해 수능에서는 수학 선택과목에 따른 불리함을 극복하고자 미적분을 푸는 문과생들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는 배경도 여기에 근거한다. 더하여 문과 출신자들에게는 대학졸업 후에 야기되는 상대적으로 좁은 취업문도 쉬 개선될 것 같지도 않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문장을 나열하는 필자의 입장은 일방적인 이과 유리, 혹은 이과 우선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융합형 인재’를 길러야 한다. 균형과 공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융합형 인재’ 양성은 교육 당국의 의지가 아닌가. 통합수능의 근본 취지가 아닌가. 방치해두면 어릴 때부터 문과 기피 현상으로 작용하여 교육의 미래를 크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하루속히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대학가에서 일고 있는 불안한 시그널의 하나는 인문학 관련 학과의 통폐합 혹은 폐과 현상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야기되는 대학의 구조조정에서 ‘대학 자체의 존립을 위한 경쟁력 확보’라는 명분 아래 이런 현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인문학 및 기초 과학과 예술 관련 학문이 이미 존폐의 경계선에서 대기 중이거나 아예 선을 이탈하여 사라졌다. 신입생 입학률을 잣대로 한국사학과와 한국어문학과도 이미 구조조정 대상이다. 한 국가의 글과 문학, 그리고 역사를 가르치는 학과가 사라지는 현상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이 품고 있는 슬픈 자화상이다.   
 
이와는 달리 즐거운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그중 하나는 한국 의사 시인회가 발간한 '코로나 19 블루'다. 이 시집을 주목한다. 질병과 싸우는 의사들의 맑은 영혼이 묻어나는 이 시집에서 “감염병이 우리 인류에게 주는 교훈은 궁극적으로 더불어 사는 삶의 깊이를 깨닫게 하는 것”이며 “전염병을 이해하는 데는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문장이 가슴으로 스며든다. “더불어 사는 삶의 깊이”와 “인문학적 성찰”은 의술만큼이나 소중한 값어치라는 함의다.  
 
시가 우리의 몸과 영혼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기능을 하는 것처럼, 인문학은 자연과학과 더불어 우리 삶에 꽃을 피우는 역할에 충실하다. 죽음의 공포를 견뎌야 하는 인간이 문학 앞에서 경건해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사유의 언어로 얻어낸 기쁨, 그것은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의 핵심이다.
 
또 다시 봄이다. 산수유와 개나리와 매화와 목련이 이미 계절에 뜻에 부응하며, 그 아름다움을 펼쳤거나 진행 중이다. 여기에 벚꽃과 진달래와 철쭉이 순서를 기다리며 개화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이 봄꽃들은 자신들의 향기가 누구에게나 골고루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연이 인간에게, 자연이 자연에게, 인간이 자연에게, 인간이 인간에게. 이런 봄꽃들의 향기처럼,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가 마주하는 여러 학문들도 서로서로에게 따스한 온기를 나누어주는 배려와 균형이 필요한 때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비즈니스 일본어과 교수         
 
홍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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