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 본회의 임명동의안 표결일인 20일 서울 종로구 한국생산성본부 건물에 마련된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에 출근,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김광연·장윤서 기자]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한 후보자 인준 여부의 결정권을 쥔 민주당은 새정부 발목잡기와 이로 인한 지방선거 참패 우려를 덜지 못하고 찬성 당론으로 선회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굴복"이라는 표현까지 나오는 등 후유증도 컸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고 한덕수 후보자 인준안을 재석 250명 중 찬성 208명, 반대 36명, 기권 6명으로 가결했다. 총리 후보자 인준은 국회 재적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으로 이뤄진다. 총리는 장관과 달리 국회 인준 없이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달 3일 한 후보자를 지명한 지 47일 만에 국회 문턱을 비로소 넘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처음부터 협치를 염두에 두고 지명한 총리"라며 "잘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후보자는 김대중정부에서 경제수석을, 노무현정부에서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냈다. 전북 전주 출신이다.
이런 배경 덕에 무난한 인준이 예상됐지만 공직과 김앤장을 오가는 회전문 전력과 이 과정에서 빚어진 이해충돌 논란이 발목을 잡았다. 특히 윤 대통령이 민주당이 결사 반대했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협치 희망이 사라졌다. 인사청문특위 위원들은 부적격 판정을 내렸고, "빈 손으로 물러설 수 없다"는 강경 기류가 당을 휘감았다. 이는 본회의 직전 열렸던 의원총회 난상토론 배경이 됐다. 의총 전만 해도 당론 반대, 또는 의원 자율투표 둘 중 하나로 결론이 날 것으로 관측됐지만 예상 외로 찬성 의견도 많았다. 일부에서는 본회의 불참을 통해 정족수 미달로 표결 자체를 무산·연기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의총은 예상보다 길어졌고, 본회의도 오후 4시에서 오후 6시로 연기됐다.
윤호중(왼쪽)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과 박홍근 원내대표가 20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 인준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표결까지 가는 끝에 민주당이 내린 결론은 인준 찬성이었다. 한 후보자가 능력, 자질, 도덕성에서 모두 부적격으로 판명됐지만 새 정부 발목을 잡을 의사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인준에 찬성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국민의힘이 '총리 없는 내각'을 내세우며 민주당의 새정부 발목잡기 여론전을 강화할 경우 국정안정론에 손을 들어주고 있는 민심이 민주당 심판으로 향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깔렸다. 이는 결국 6월 지방선거의 참패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고려도 더해졌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찬성을 결정했음에도 반대가 36표나 나올 정도로 반기를 든 의원들도 많았다. 일부는 "굴복"이라고 했다.
윤호중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의총 직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인사청문회를 통해 총리로서의 능력, 자질, 도덕성에 모두 미달한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확인했다"면서도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여러 대내외적인 경제상황과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문제 등으로 인해 총리 자리를 오랜 기간 비워 둘 수 없다는 점, 새 정부 출범 후 우리 야당이 막무가내로 발목잡기를 하거나 방해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윤석열정부의 인사참사에 대해 저희가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동시에 “아직 임명되지 못한 장관이 있고, 임명됐지만 장관으로 부적격한 인사에 대해서는 저희가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윤 대통령의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하다는 말을 드린다"며 임명이 보류된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 철회를 사실상 요구했다. 민주당이 대승적 차원에서 한덕수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준을 당론으로 찬성했으니 윤 대통령도 그에 합당한 명분을 쥐어달라는 요청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은 즉각 환영했다. 허은아 대변인은 "민주당이 한 후보자 인준안을 가결하기로 당론을 결정한 것을 환영한다"며 "향후 국정운영의 수레바퀴가 원활히 굴러갈 수 있게 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반겼다. 대통령실도 강인선 대변인 명의로 "한 후보자 인준안이 국회를 통과한 데 대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국정 수행의 동반자인 야당과 더 긴밀히 대화하고 협력해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끌겠다"고 말했다. 남은 과제는 민주당이 요구한 정호영 후보자 임명 여부로, 윤 대통령이 자진사퇴 형식으로 지명 철회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호영 후보자마저 강행할 경우 여야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17일 윤 대통령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하자 "협치를 요구해서 안 될 것"이라며 경고하고, 한 후보자 인준 여부를 가리기 위한 국회 본회의 소집 카드로 맞불을 놨다. 당내에서는 한동훈 장관 임명 강행을 "야당에 대한 선전포고이자 협치 파기"로 간주하고 "이대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강경 기류가 급속도로 퍼졌다. 인사청문특위 야당 간사인 강병원 의원은 19일 동료 의원들에게 "총리 후보자 인준 반대를 당의 공식 입장으로 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을 비롯해 지방선거에 출마한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인준 찬성을 요구하면서 당내 기류에도 변화 조짐이 일었다. 이재명 위원장은 최근 잇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적 의견'을 전제하면서도 "국민의 눈높이에 안 맞고 부족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정부 출범 초기이니 기회를 열어주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인준 찬성 의사를 내비쳤고,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와 이광재 강원지사 후보 등도 당의 전향적 태도를 촉구했다. 신현영 대변인은 “(지방선거에 출마하는)후보들의 의중을 감안해서 결정을 했다”고 찬성 당론 배경을 설명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장고 끝에 내린 민주당의 '고육지책'"으로 평가하고 "부결시켰을 경우 윤석열 대통령은 치명타를 맞지만, 민주당은 더 큰 치명타를 맞고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만약 부결로 당론을 정했는데도 본회의를 통과하면 내부 분열만 노출하게 된다"며 "지방선거도 매우 중요한 이유였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차선을 택했다"고 평가했다.
김광연·장윤서기자 fun35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