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정부가 이공계 인력 양성만 대대적으로 외치면서 인문학과 폐과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뒤늦게 인문학을 진흥하겠다며 대책 마련에는 나섰지만 학계에선 효과를 거둘지 미지수라는 분위기다.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976개에 달했던 인문학 학과는 2020년 828개 학과로 줄었다. 8년간 148개 학과가 사라진 꼴로, 1년마다 약 19개씩 줄어든 것이다. 입학 정원도 같은 기간 4만6108명에서 3만3752명으로 약 27% 감소했다.
취업 시장에서 인문학과 출신 학생들이 인기가 줄어들고 이에 따라 수험생들도 지원하지 않으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학생들의 이공계 선호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지만, 이대로는 문·이과 불균형을 넘어 인문학과가 소멸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교육부 또한 당시 자료를 발표하면서 "과학기술 연구개발(R&D)과 인문·사회 학술지원 간 예산 격차는 점차 확대되고 있어 학문 분야 간 불균형이 우려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부터 2026년까지 5년간 '제2차 인문학·인문정신문화 진흥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우선 국립대학에 인문학 육성 의무를 부과하는 국립대학법 개정을 추진한다. 또 인문 장학금과 연구비 지원을 확대한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지난 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반도체 인재양성 특별 미션팀 제1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다만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인문·사회계열 연구 활성화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교육부는 올해 인문·사회 분야 학술 지원 사업 규모를 지난해보다 약 16억원 증액한 약 305억원으로 잡고 신규 선정 과제도 확대했다. 그런데도 이 사업에 지원한 총 과제 수는 지난해 4934개에서 올해 4320개로 줄었다. 정부가 사업 규모를 키웠지만 연구자들의 지원은 반대로 줄어든 것이다.
류웅재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올해 정부가 지원하는 인문·사회 분야 학술 지원 사업의 규모가 커졌음에도 지원한 연구자들의 연구 과제가 줄었다는 건 인문학과 관련 정책, 정부와 정치, 사회적 숙의와 공론장이 위축됐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올해 이공 분야 학술연구 지원에는 1633개 신규 과제가 선정돼 총 889억14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예산은 줄었지만 인문·사회계열과 비교하면 격차는 여전히 크다.
이처럼 인문학의 위기가 계속되자 대학가에선 교육부의 대학평가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평가 제도는 학생들의 취업률이 주요 지표인데, 인문학과의 경우 취업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폐과가 잇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인문학 진흥 정책도 과학기술과 연계해서만 보지 말고 사회적 소수자나 젠더 갈등, 청년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할 수 있도록 포용적으로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 소재 한 대학 관계자는 "문·이과 학문을 융복합해 인재를 키우는 것은 좋지만 인문학을 첨단기술 개발을 위한 도구로만 키우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인문학은 창의력과 상상력을 길러주는 고유의 역할이 있으며 공학적인 세계관의 부작용을 비판하는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