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고유가가 휘발유·경유 가격 상승에 '직격탄'으로 작용하고, 전반적인 물가 인상까지 겹치면서 정유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른바 '횡재세' 논의를 위시한 정치권과 정부의 고통 분담 요구가 빗발치기 때문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유소의 휘발유·경유 가격은 지난달 30일에서 지난 1일까지 11.37원 및 7.38원 하락했다.
이번달 들어오면서 유류세 인하폭이 기존 30%에서 37%로 확대됐으나 차량 이용자들이 체감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시각이다.
지난 1일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오른쪽)이 김동섭 석유공사 사장(왼쪽)과 서울 강서구 알뜰 목화 주유소를 방문해 유류세인하분이 반영된 판매 가격표로 교체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뉴시스 사진)
정치권과 정부는 유류세 인하폭 확대에 그치지 않고 추가적인 인하를 원하고 있다. 기본소득당 용해인 의원은 지난 4월 '횡재세'를 제안했다. 고유가로 인한 초과이익을 환수하자는 횡재세는 영국에 도입됐고, 미국에서도 추진 중이다.
아울러 여당인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달 23일 "정유사들도 고유가 상황에서 혼자만 배 불리려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역시 지난 21일 "정유업계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겠다"고 발언했고, 같은 당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정유사의 초과 이익을 최소화하거나 기금 출연 등을 통해 환수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최근 정부는 정유업 및 주유업에 대해 담합 점검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합동점검반을 꾸렸고, 지난 1일은 기획재정부 차원에서 '엄중 조처' 표현이 나왔다. 업계에서는 크게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고통 부담에 운을 띄웠는데도 정유업체들이 응답하지 않아 정부가 행정력을 동원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업체들은 횡재세를 위시한 고통 분담 요구가 안타깝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횡재세는 영국 및 미국에서 매장 석유·가스를 개발하는 업체에 해당하는데, 한국 정유업체는 개발이 아니라 정제를 한다"며 "개발 비용은 정제 비용보다 매우 싸기 때문에 개발 업체는 정제 업체보다 많이 남긴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국 횡재세의 전제조건은 석유·가스 개발에 투자할 경우 세액을 99% 환급하는 것"이라면서 "즉 세금의 목적이 공급 증대를 통한 가격 하락에 집중하는데 반해, 한국은 세금의 용처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탄소중립을 맞아 정유사들은 수소, 배터리, 바이오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면서 "여기 쓰일 걸 다시 환수할 경우 미래 성장 마중물조차 없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이번처럼 이익을 보는 게 아니라 손실이 났을 때 정부의 보전 선례가 존재하지 않고, 앞으로도 없을텐데 횡재세 도입이 어불성설이라는 주장도 있다.
다만, 정치권과 정부의 요구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하는 모양새다. 업계 관계자는 "고유가로 인해 정치권 요구에 대해 업계에서 고민이 많은 상황은 맞다"며 "어떻게 할지 중지가 모아지지 않아 상황을 예의주시해서 살피는 중"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정제마진이 높게 유지되고, 중국의 석유제품 수출 쿼터가 감소하는데다 다음달부터 9월까지 미국에서 허리케인으로 인해 석유제품 시설이 타격을 받아 국내 정유사들이 수혜를 볼 것으로 보고 있다. 각 회사별로 고통 분담 재원이 2500억원에서 5000억원 생기고, 휘발유·정유에서 리터당 100~200원에 해당하는 자발적인 가격 인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게다가 이번달 내 2분기 실적이 개별 1조원 안팎 내지 업체에 따라 2조원까지도 예상되는만큼 고통 분담 요구가 사회적으로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