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8·28 전당대회를 앞두고 '97세대'(90년대 학번·70년대생) 의원들의 출사표가 이어지고 있다. 이미 강병원, 박용진, 강훈식 의원이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한 데 이어 박주민 의원도 출마를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재명 의원의 출마도 기정사실이 되고 있으니, 민주당 당대표 경선은 '이재명 대 97세대 후보들' 간의 대결로 압축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97세대 후보들의 잇따른 출마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안팎에서는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의 분위기가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당권 경쟁에 뛰어든 민주당의 97주자들이 과연 대선후보였던 이재명을 넘어설 수 있을까. 당권은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86세대와는 다른 자신들의 독자적 기치를 국민에게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번 전당대회에서 97주자들이 대거 나선 것은 그동안 당을 주도해왔던 86그룹이 불출마를 결정하면서였다. '친문'계의 홍영표·전해철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고, 관심을 모았던 이인영 의원도 97그룹을 밀어주겠다며 불출마를 표명하면서 모처럼 97그룹이 주목받는 전당대회가 된 것이다. 86그룹들이 당대표 경선에 나서지 않게 된 것은 그동안 제기되어 왔던 '86 용퇴론' 부담 때문으로 보인다. 당 밖의 민심에서는 물론이고 당내에서도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 등에 의해 ’86 용퇴론’이 강하게 제기된 마당에, 더구나 송영길 전 대표, 윤호중 전 비대위원장, 박홍근 원내대표 등 86그룹이 이끈 체제에서 대선과 지방선거 모두 패배했으니 86그룹이 다시 당권을 쥐려 했다가는 강한 역풍이 불 상황이었다. 86그룹의 집단적 용퇴론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왔던 이들이지만, 일단 당권 경쟁에는 나서지 않는 선에서 절충적 선택을 한 셈이다.
97세대 주자들은 출사표를 던지면서 하나같이 그동안 민주당이 보여온 모습에 대해 반성의 말들을 꺼내고 있다.
"검수완박만 하더라도 우리만 옳다는 독선에 빠졌던 것이 아니었나. 경찰의 비대해진 권한 통제 등의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너무 성급하게 추진했던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강병원 의원)
"더 이상 진영 논리를 위해 악성 팬덤과 정치 훌리건, 좌표 부대에 눈을 감는 민주당이 돼선 안 된다. 계파와 팬덤의 수렁을 넘어 민주당이 하고 싶은 정치를 찾자."(박용진 의원)
"현실과 동떨어진 부동산 정책을 고집하고 관료 주도의 민생대책에 떠밀려 유능한 민생정당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검찰개혁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국민께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급히 추진했다."(강훈식 의원)
민심의 눈높이에서 보았을 때,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옳은 말들이다. 그렇지만 너무도 늦었다. 뒤늦게 반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97주자들 모두 지난 '검수완박' 법안들의 국회 처리 때는 적극 동조하거나 찬성표에 가세했었기 때문이다. 법안이 기로에 서있을 때는 동조하거나 침묵하다가, 당대표 경선에 나서게 되니까 비로소 반성문을 쓰는 모습이 된 것이다.
역시 당대표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박주민 의원의 경우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박 의원은 민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의 계기가 된 '임대차 3법'과 '검수완박'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그는 민심의 역풍을 불어오곤 했던 당내 강경파 모임 '처럼회'를 주도해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자신이 주도했던 법들이 실패작으로 끝나고 민심의 저항을 초래했음에도 아무런 사과 한마디 없었다. 박 의원의 경우는 민주당의 강경파가 주도했던 입법독주의 대표적인 책임자라는 점에서 민주당 개혁의 '주체'가 아닌 '대상'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동안 침묵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반성한다고 나서는 97세대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이들 X세대를 가리키는 '낀낀세대'라는 말을 떠올린다. X세대의 위로는 베이비붐 세대와 86세대가 있고, 아래로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1997년 이후 출생)가 있다. 그래서 X세대는 독자적인 권한도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상태에서 어느덧 밀레니얼 세대에게 밀려나는 처지가 되었다는 얘기가 나오곤 한다. 집단주의적 이념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86그룹과는 달리, 개인주의적이고 탈이념적인 특성을 가졌던 97세대이었건만 독자적인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한계를 드러내왔다. 86세대들에게 많은 권한들이 주어진 채 자신들은 응원자로서만 자리했기에, 86세대의 부속처럼 인식되어온 것 또한 사실이다. 막상 자신들은 이념의 시대를 살지 않았으면서도 86들의 이념편향 정치를 지지하는 팬덤이 되어왔던 것도 이들 세대의 한계였다.
과연 이제라도 97세대가 '낀낀세대'가 아닌 독자적인 길을 가는 정치세대가 될 수 있을까. 민주당이 이제까지 보여왔던 모습에 대한 통렬한 반성 위에서, 86세대가 고집한 진영과 내로남불의 정치를 넘어 탈진영적 공존의 정치를 97세대는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 97세대가 모처럼 칼을 뽑았지만, 그 칼로 무나 베고 말 것인지, 아니면 진영의 극단주의와 팬덤정치를 벨 것인지, 아직은 지켜볼 시간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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