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근처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 둘째, 넷째 주에 매출이 50% 이상 늘어나요. 지금도 대형마트가 운영하는 첫째, 셋째 주에는 손님이 아예 없는 수준이에요."
30년째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서 정육점을 운영해온 A씨는 최근 거론되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문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A씨는 한 곳에서 오래 가게를 운영한 덕에 지난 정권에서 우수 가게로 지정되기도 했으나 새정부 들어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안이 부상하며 근심이 커졌다. A씨는 대형마트가 휴업할 때 품질 좋은 한우 고기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해 단골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해왔다. 대형마트 휴업일이 A씨에게는 단골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다.
A씨는 온라인 쇼핑 증가로 인한 대형마트 의무휴업 피해를 주장하는 대형마트 측의 의견에 대해, 오프라인 대형마트 유통사의 온라인 채널 대응 부족과 의무휴업 폐지는 무관한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A씨는 "의무휴업을 폐지한다고 해서 온라인 쇼핑을 하던 이들이 오프라인으로 옮겨가는 것은 아니다"라며 "소상공인, 골목상권을 무너뜨린다고 대형마트의 이익이 늘어난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이 운영하는 '국민제안'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제안이 1위를 차지했다. (사진=국민제안 홈페이지 캡처)
최근 제20대 대통령실에서 진행한 국민제안 투표 결과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제안이 좋아요 57만7415개로 1위를 차지했다. 어뷰징 문제로 대통령실이 이번에는 우수제안 3건을 선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1일 밝혔지만, 이와 별개로 의무휴업의 실효성 문제는 재점화된 모양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선택권을 이유로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소상공인들의 입장은 다르다. 고물가, 고금리, 원자재 가격 인상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까지 폐지라는 악재까지 덮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홍춘호 한국마트협회 이사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는 매출 차이가 20% 가까이 난다"며 "의무휴업으로 인한 효과가 없다고 하는 것은 침소봉대다. 전통시장 매출만 비교할 것이 아니라 동일업종인 종합소매업 등의 매출과 비교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경제 주체간 균형적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의무휴업은 일정한 공공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성명서를 통해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 대규모 점포 등과 중소유통업의 상생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자 마지노선"이라며 "마지노선이 무너지면 지역경제와 건전한 유통질서는 물론 상생발전을 위한 노력이 모두 후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지난달 28일 국회 업무보고를 통해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여부를 국민제안에 올려 고려하는 방식은 굉장히 위험하다"며 "코로나19 이후의 영향 평가 없이 바로 강행되면 안된다"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소비자에 대해 연구하는 학계에서도 대안 없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온라인 쇼핑이 대세로 가고 있는 시점에서 규제는 의미가 없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규제가 없어야 편익을 최대로 올릴 수 있다"면서도 "지금은 일의 순서가 틀렸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1차로 먼저 골목상권, 전통시장 활성화 지원 방안, 경쟁력 강화 방안 등이 나온 뒤에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를 논의해야 하는데 지금은 순서가 뒤바뀌었다"며 "지원책이 나오고 규제를 논의해야 하는 것이 일의 순서"라고 일침을 가했다.
한편,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의무휴업은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을 통해 도입됐다.
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