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백 민주당 의원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신원식·한기호 의원 주최로 열린 신해양강국을 위한 해군의 역할과 발전방안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는 당직자가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될 경우 직무를 정지하도록 한 당헌 80조를 ‘금고 이상의 1심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로 개정키로 의견을 모았다. 이재명 의원을 지지하는 강성 당원들이 청원시스템을 통해 당헌 80조 개정을 요구한 데 따른 결론이다. 하지만 박용진 당대표 후보를 비롯해 반명(반이재명)계에서는 해당 개정을 ‘이재명 방탄용’이라고 규정, 반발에 나서 극심한 후유증이 예상된다.
민주당 전준위는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마지막 회의를 열고 당헌 80조 개정을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당헌 80조 1항에는 ‘부정부패 관련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준위는 이를 ‘하급심(1심)에서 금고 이상의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 직무를 정지한다’는 내용으로 수정하기로 했다. 전준위 대변인을 맡고 있는 전용기 의원은 이날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전한 뒤 “(1심에서 유죄가 나오더라도)2심이나 최종심 등 상급심에서 무죄나 금고 이상이 아닌 판결이 나올 경우 직무 정지의 효력을 상실하도록 했다”고 부연했다.
또 당헌 80조 3항 ‘정치탄압 등 이유가 있을 경우 윤리심판원 심의의결에 따라 징계 처분을 취소 또는 정지할 수 있다’는 조항은 윤리심판원 조사 후 최고위원회 의결을 거쳐 징계 처분 취소 또는 정지할 수 있도록 구제조항을 유지키로 했다. 전 의원은 “기소가 돼도 윤리심판원이 열리면 30일 정도가 소요돼 조사 하는 동안 당무가 정지될 위험이 있다”며 “윤리심판원에서도 조사를 하되, 최고위에서도 자체 판단을 할 수 있게끔 격상했다”고 말했다.
이날 전준위에서 의결된 당헌 80조 개정은 비상대책위원회와 당무위원회, 중앙위원회 의결을 거쳐 효력이 발생하고, 오는 28일 열리는 전당대회를 거쳐 최종 시행이 확정된다. 당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비대위는 오는 17일 회의를 열고 당헌 80조 개정 의결을 위한 당무위와 중앙위 소집요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당 회의 일정을 고려하면 오는 19일 당무위가 열릴 가능성이 높고, 중앙위는 다음주 중으로 개최될 수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반명계를 중심으로 전준위 의결에 대한 반발 또한 확산되는 모양새다. 각종 의혹에 휩싸인 유력 당권주자 이재명 당대표 후보를 위한 ‘방탄용’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 후보의 경쟁상대인 박용진 후보는 이날 의원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의총까지 오면서 이 이야기를 공론화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유감의 말씀을 드렸고, 당헌 80조 개정 관련 논의가 정치적인 자충수가 되고 우리 당의 도덕적, 정치적 기준에 대한 논란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말씀을 드렸다”고 했다. 또 “오늘 의총 중에 전준위에서 (당헌 80조 개정안이)의결됐다는 소식을 듣고 마지막 남은 것은 비대위에서 현명하게 해결해주시는 것이라 생각하고 비대위 논의를 기대한다”고 했다.
앞서 박 후보는 이날 오전 KBS라디오 인터뷰에서도 “박근혜정부 때의 검찰은 우리한테 우호적이었느냐.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이 조항을 바꿔야 한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당헌 80조는)야당일 때 문재인 당대표가 만들었다. 조국 혁신위원하고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야당 탄압의 루트를 뚫어놨다는 얘기인가"라고 반문했다.
윤영찬 최고위원 후보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당헌은 민주당의 헌법인데 헌법을 개정하는 일을 전준위가 일방적으로 확정했다”며 ‘이재명 방탄’을 위한 전준위의 졸속 의결을 비판했다. 윤 후보는 그러면서 “특정인의 이익, 특정 세력의 사익을 위해 철학과 가치를 버리는 것이 패거리 정치”라며 “특정인의 졸속 당헌 개정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겠냐”라고 따져 물었다.
이날 의총에서는 약 6명의 의원들이 당헌 80조 개정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조응천 의원은 의총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반대한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결정했다”며 “비대위에서 바로잡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3선급 의원들은 이날 오후 ‘긴급 간담회’를 열고 당헌 80조 개정에 대한 논의에 돌입하기도 했다. 17일 비대위에서 개정이 의결되면 돌이킬 수 없을 것으로 보고, 그 전에 중지를 모아 비대위에 반대 의사를 전달하겠다는 의도다. 이원욱 의원은 이날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오늘 7명의 의원들이 참석했다”며 “시기적으로 지금 이 논의가 이뤄진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게 7명의 공통 의견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날 3선급 의원이 모두 모이지 않은 만큼 한정애 의원을 중심으로 불참한 의원들 의견을 반영해 비대위에 전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재명 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지난 15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지역 당원·지지자와의 토크 콘서트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면 친명(친이재명)계 의원들은 윤석열정부에서 민주당을 향한 무리한 검찰 기소가 이뤄진다는 점에 주목, ‘동지를 지켜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친명계인 임종성 의원은 이날 의총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범죄사실이 확인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직을 내려놓는 것은 맞지 않다”며 “진짜 잘못된 것이 아닌데 프레임이 씌워지는 것이 많다. 국회에서 개선할 것은 빠르게 개선해야 피해자가 안 나온다”고 했다.
전준위는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당내 비판을 의식한 듯 ‘특정인’을 위한 개정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전 의원은 “야당 입장에서는 (정부여당에 대한)많은 의혹과 다양한 사안을 제기할 텐데, 그 과정에서 무작위로 기소될 위험이 충분하다”며 “기소만으로 당직 정지는 무리한 측면이 있다”고 불가피성을 거듭 강조했다.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오전 MBC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당헌 80조 개정과 관련해)’이재명 지키기’라고 하는데 사실은 기소될 가능성이 있는 의원들은 친문(친문재인) 성향의 의원들이 더 많다”고 설득에 주력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친문계 의원들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출신의 한 의원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지도부가 이 문제를 당대표 선거 전에 마무리했어야 논란이 덜할 텐데 ‘이재명 봐주기’를 위한 것으로 비쳐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검찰이 문재인정부의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난처함도 커졌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