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기자가 사건의 당사자 동의 없이 판결문을 제공받아 열람했더라도, 이를 토대로 한 기사에 허위 사실이 없다면 국민의 알권리와 공익성이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사건 당사자인 A씨가 자신의 동의 없이 판결문을 제공·열람한 B기자와 해당 언론사, 대한민국 등을 상대로 낸 5억58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판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개인정보보호법’, ‘형사 판결서 등의 열람 및 복사에 관한 규칙’, ‘형사 판결서 등의 열람 및 복사에 관한 예규’에 관한 법리 등과 명예훼손에서 허위사실과 공익성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하거나 사실을 오인하는 등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B기자는 2013년 8월 전주지법 공보판사를 통해 A씨의 형사사건 판결문을 비실명 처리 상태로 열람한 뒤 이 판결문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했다. 당시 A씨는 공전자기록 등 부실기재 및 기록행사 등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A씨는 자신의 동의 없이 공보판사가 B기자에게 자신에 대한 판결문을 공개해 기사를 작성토록 했다며 대한민국, 언론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기사에서 A씨가 지적하는 내용들(자극적 제목 등 주장)이 허위보도라고 볼 수 없고, 인적사항을 공개했다고도 보기 어려워 사생활 침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설령 사생활 침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공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대한민국(공보판사 판결문 제공) 책임 여부에 대해서도 “각 법원은 공보관을 둬 그 지역 법원의 홍보 및 언론 보도 관련 업무를 맡기고 있다”면서 “공보판사는 판결문 공개 당시 A씨의 사생활 보호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 A씨는 물론 피해자 모두를 비실명 처리하는 등 B기자에게 판결문을 열람시킨 행위만으로 그 과정에 있어 위법이 있다거나 고의 또는 과실로 A씨의 명예 또는 그 밖의 인격권 내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2심 재판부도 “기사 내용상 B기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기사를 작성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설령 A씨의 주장과 같이 이 기사로 인해 A씨에 대한 구체적 사실이 적시됨으로써 명예가 훼손됐다고 하더라도 B끼자 등의 기사 게재행위에 위법성이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A씨가 제기한 항소를 기각했다.
또한 “판결문 공개 행위는 공보판사의 업무로 인한 행위로서 그 필요성과 정당성이 인정된다”며 “헌법은 판결의 공개를 일반원칙으로 선언하면서 판결의 공개에 대해서는 심리의 공개와 달리 어떠한 제한 사유도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만일 판결문에 대한 비실명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A씨 대한 개인정보를 유출하거나 부당한 목적을 위해 사용될 가능성 역시 없었다는 판단이다.
이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판의 심리와 선고는 법원조직법 57조 1항에 따라 공개되므로 B기자로서는 관련 형사사건 재판 방청을 통해 내용을 취재해 보도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공보판사의 기자에 대한 판결문 공개 행위는 ‘재판보도’ 관련 국민의 알권리 등을 위한 것으로 그 과정에서 침해될 수 있는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 등의 이익에 비춰 그 이익이 부족하다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청사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