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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스토킹 범죄',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입력 : 2022-09-19 오전 6:00:00
스토킹 범죄 피해자가 또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20대 꽃다운 나이에 져버린 피해자는 자신이 근무하는 공간에서, 그것도 전 동료에게 당했다. 뭐라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애통하고 분통하다.
 
7개월 전에도 서울 구로구에서 40대 여성이 스토킹범에게 참변을 당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서울 중구에서 '스토킹 살인범' 김병찬이 전 여자친구를 그녀의 오피스텔에서 살해했다. 불과 한달 뒤에는 이석준이 전 여자친구 집을 찾아가 흉기를 휘둘러 그녀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남동생을 중태에 빠뜨렸다. 스토킹 피해자들은 이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이 사건들은 모두 지난해 10월1일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벌어졌다. 법 시행 6개월 전 김태현이, 만남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스토킹 피해 여성의 집으로 찾아가 그 여성을 포함한 세모녀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스토킹처벌법이 당시 시행됐다면 참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었다. 그러나 이후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스토킹처벌법의 순진함을 철저히 비웃고 있다. 경찰청 통계만 봐도 스토킹범죄 발생 건수는 법 시행 한달 후인 2021년 11월 277건에서 올해 3월엔 2369건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최근의 '스토킹 살인사건'은 범죄자들의 성향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허술하게 만들어진 국회의 입법과 검경의 적극성·전문성 결여, 법원의 기계적인 영장심사가 조합된 구조적 문제의 산물이다. 
 
스토킹처벌법상 스토킹 범죄는 친고죄가 아니지만 반의사불벌죄다. 법 18조 3항은 스토킹 범죄자를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해자나 가족 등의 고소·고발 없이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하면서 기소여부는 피해자에게 결정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법은 여기에다가 피해자에게 가해자에 대한 처벌 의사를 '구체적'으로 밝히길 강요하고 있다. 그 기준의 모호성은 차치하더라도 '구체적' 의사가 형성되는 과정을 살피지 못한 허술함은 가해자의 가족이나 그를 지지하는 자들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도 유발하고 있다.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병적인 집착이 주요 구성요소다. 여기에서의 집착은 '단순 괴롭힘'의 목적도 없지 않겠지만 비뚤어진 연정과 동경 등의 복잡한 심리가 뒤엉킨 경우가 많다. 경찰청이 지난 6월 발표한 '2021 사회적 약자 보호 치안백서'에 따르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중 연인(20.9%)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런 심리가 고착될수록 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앙심을 키우게 된다. 뒤틀린 연정과 동경의 대상으로부터 거절당하고 경찰조사까지 받는 가해자로서는 피해자에게 합의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이유 없이 폭발적인 보복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입건 돼 조사 받는 과정에서 진실한 반성과 함께 피해자를 그만 놓아줄 사람이었다면 애초부터 스토킹을 하지도 않았다. 법이 스토킹 범죄를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난센스'다. 
 
수사·사법당국의 소극적·기계적 대응도 문제다. 법원은 경찰이 지난해 10월 신청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범'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피해자에 대한 위해 가능성은 적극적으로 고려되지 않았다.
 
그 후로 1년이 흘렀으니 위해 우려가 없다는 법원의 항변이 가능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스토킹 범죄가 강력범죄로 돌변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은 그동안의 수많은 사례를 통해 이미 확인된 바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가해자 역시 범행 당일 법원에 두달치 반성문을 한꺼번에 낸 뒤 몇시간 뒤인 피해자를 찾아가 살인을 저질렀다.
 
경찰과 검찰도 마찬가지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이해가 충실했다면, 영장을 재청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경찰은 검찰로 송치했으니, 검찰은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했으니 할 일 다 했다는 식으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 징역형을 9년이나 구형하면서 검경과 사법부는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수사 결과가 나오겠지만 '신당역 스토킹' 살인범이 범행을 결심한 것도 검찰의 구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국회와 수사·사법당국은 스토킹 범죄에 대한 인식부터 완전히 바꿔야 한다. 보여주기식 정책 전시와 안일한 태도로 불완전한 기계장치에나 의존하면서 예산 탓이나 하고 앉았다간 우리는 스토킹 범죄의 비극을 또다시 마주칠 수밖에 없다.
 
최기철 사회부장
 
최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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