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1950년대부터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제공한 여성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9일 A씨 등 9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법률을 위반하고 준수해야 할 준칙과 규범을 위반한 것으로서 위법하여 이로 인해 원고들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 있고, 국가의 격리수용 치료도 일부 위법하다고 볼 수 있다”며 “피고의 국가배상책임이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아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A씨 등은 1957년부터 미국 주둔지 주변 상업지구인 기지촌에서 미군 대상 성매매를 한 여성들로 ‘미군 위안부’라고도 불리었다. 당시 우리 정부 총무처는 UN군 이동에 따른 성병관리문제 등을 이유로 UN군 출입 성매매 업소에서 근무하는 여성들을 집결시키고, 이른바 기지촌을 조성해 성병을 관리했다.
그로부터 60여년이 지나 2014년 10월 A씨 등 122명은 정부가 성매매를 조장하고 조직적인 성병관리 업무로 불법 격리 수용치료를 해 신체적·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심은 정부가 기지촌을 설치하고 환경개선정책 등을 시행한 것이 불법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시행되던 구 전염병예방법과 시행규칙에는 강제격리 대상자로 성병 환자가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제격리로 인한 불법행위 부분만 인용했다. 이에 따라 성병 감염인에 대한 격리 수용 규정이 시행된 1977년 8월 이전에 격리 수용된 A씨 등 57명에게 각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나머지 65명의 청구는 모두 기각했다.
2심은 국가가 성매매 중간매개·방조 역할을 하거나 성매매를 정당화·조장했다고 봤다. 복지부, 경기도, 경찰, 춘천시가 작성한 공문을 통해 위안부의 성매매를 관리하는 등 기지촌 운영·관리에 국가가 개입한 정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1심과 달리 전염병 예방법 시행규칙 시행 이후 격리된 여성들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이에 따라 강제격리 경험이 있는 74명에게 각 700만원, 강제격리 경험이 없는 43명에게도 각 300만원을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항소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국가가 주도해 미군 기지촌을 조정·관리·운영하고 성매매를 적극적으로 정당화 내지 조장한 행위가 실정법을 위반, 객관적 정당성을 결한 것으로 위법한 행위임을 확인함과 동시에 이 같은 행위가 과거사정리법상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해 장기소멸시효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선언한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2019년 3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정론관에서 당시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과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경기여성연대 관계자들이 기지촌 미군 '위안부' 입법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