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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8촌 이내 금혼' 합헌…무효사유 인정은 헌법 불합치"
입력 : 2022-10-27 오후 3:28:27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8촌 이내 혈족사이에서는 혼인할 수 없도록 규정한 민법상 '금혼조항'(민법 809조 1항)은 혼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다만, 금혼조항을 근거로 이미 신고된 혼인을 무효라고 규정한 민법 815조 2호는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헌재 전원재판부는 27일 6촌 사이 혈족과 혼인했다가 법원으로부터 혼인 무효 확인을 받은 A씨가 "민법 809조 1항은 혼인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며 청구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기각했다. 헌법 재판관들은 그러나 금혼조항 위반을 혼인무효사유로 규정한 민법 815조 2호에 대해서는 일치된 의견으로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국회가 민법 815조 2호를 개정하지 않으면 2024년 12월31일 이후 효력을 잃는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착석하고 있다. 헌재는 이날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을 금지하고 이를 혼인무효 사유로 규정한 민법 조항에 대해 혼인 금지는 합헌, 혼인 무효는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렸다. 아동학대행위자의 인적사항을 보도할 경우 이를 처벌하는 조항은 합헌이라 판단했다. (사진=뉴시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근친혼을 금지하는 이유는 가까운 혈족 사이 관계의 혼란을 방지하고 가족제도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함이지만 우리나라는 혼인공시제도가 없어 당사자가 우연한 사정으로 사후 확인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특히 이미 근친혼이 성립돼 자녀를 출산하거나 가족 내 신뢰와 협력에 대한 기대가 발생했다고 볼 사정이 있는 경우까지 일률적으로 그 효력을 소급하여 상실시킨다면, 이는 가족제도의 기능 유지라는 본래의 입법목적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또 "민법 815조 2호는 근친혼의 구체적 양상을 살피지 않은 채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을 일률적·획일적으로 혼인무효사유로 규정하고, 혼인관계의 형성과 유지를 신뢰한 당사자나 그 자녀의 법적 지위를 보호하기 위한 예외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면서 "입법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는 과도한 제한으로서 침해의 최소성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법 815조 2호는 경우에 따라 개인의 생존권이나 자의 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한 당사자가 다른 당사자로부터 일방적으로 유기를 당하는 등의 이른바 축출이혼에 악용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결국 민법 815조 2호는 법익균형성도 충족한다고 볼 수 없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해 혼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금혼조항에 대한 판단에서 "가까운 혈족 사이의 혼인(근친혼)의 경우, 가까운 혈족 사이의 서열이나 영향력의 작용을 통해 개인의 자유롭고 진실한 혼인 의사의 형성·합치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고, 성적 긴장이나 갈등·착취 관계를 초래할 수 있으며, 종래 형성되어 계속된 가까운 혈족 사이의 신분관계를 변경시켜 개별 구성원의 역할과 지위에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인류 문화에서 보편적으로 금기시되는 근친상간(incest)은 근친혼 당사자나 그 자녀들이 가족·친족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신뢰와 애정에 기초한 사적 유대 및 협력관계를 갖기 어렵게 하여 가까운 혈족의 해체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 1차적으로 가까운 혈족이 담당하는 구성원에 대한 보호와 부양에서 배제되는 구성원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다면 금혼조항은 근친혼으로 인해 가까운 혈족 사이의 상호 관계 및 역할, 지위와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방지하고 가족제도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8촌 이내의 혈족 사이의 법률상의 혼인을 금지한 것은 근친혼의 발생을 억제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에 입법목적 달성에 적합한 수단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금혼조항이 지금의 사회적 상황에 비춰봐도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산업화·도시화와 교통·통신의 발달, 전국적인 인구이동 및 도시집중 현상 등과 같이 친족 관념이나 가족의 기능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회·문화적 변동이 계속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도 친족 관념이나 가족의 기능에 관해 세대 간 견해의 변화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만큼, 금혼조항이 입법목적 달성에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제한을 가하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금혼조항이 정한, 법률혼이 금지되는 혈족의 범위는 외국의 입법례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은 것은 사실이지만 근친혼이 가족 내에서 혼란을 초래하거나 가족의 기능을 저해하는 범위는 가족의 범주에 관한 인식과 합의에 주로 달려 있다"면서 "역사·종교·문화적 배경이나 생활양식의 차이로 인해 상이한 가족 관념을 가지고 있는 국가 사이의 단순 비교가 의미를 가지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하면 금혼조항이 침해의 최소성에 반한다고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금혼조항으로 인해 법률상의 배우자 선택이 제한되는 범위는 친족관계 내에서도 8촌 이내의 혈족으로, 넓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그에 비해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을 금지함으로써 가족질서를 보호하고 유지한다는 공익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금혼조항은 법익균형성에도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A씨는 2016년 5월 6촌간인 B씨와 혼인신고를 했으나 B씨가 6촌 사이임을 이유로 대구가정법원 상주지원에 혼인무효 소송을 냈고, 법원은 두 사람의 혼인이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을 금지하고 있는 민법상 금혼조항인 809조 1항과 815조 2호를 근거로 무효임을 확인했다.
 
이에 A씨가 항소해 재판이 계속되던 중 금혼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재판부에 신청했으나 항소와 신청이 모두 기각되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최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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