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자식빼고 싹 다 바꿔
”라는 한마디가 주는 울림은 컸다
. 회장직에 취임한 지
6년만에 참다참다 나온 그동안 울분이 함축된 표현이기도 했다
.
이재용 회장이 이사회 의결로 삼성그룹 신임회장으로 승진한 날인 10월 27일. 이건희 전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영상을 우연찮게 다시 접했다. 회장 취임 이후 “양보다 질”이라는 말을 숱하게 했지만, 이건희 전 회장이 최고 결정권자로 6년간 느낀 삼성이라는 조직은 “그렇게 강조했는데도 들어먹지 않았고” “일하는 사람 발목을 잡기만 하는” 기업이었다.
“회장 취임 이후 잠을 제대로 못잔다”는 말로 오너 회장의 고뇌를 함축하기도 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말이 나온 1993년을 시점으로 삼성은 환골탈태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삼성은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변신했다.
이재용 회장도 여러 어록을 남겼다. 27일 취임사를 대신해 사내게시판에 올린 ‘미래를 위한 도전’이라는 글에서 “인재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며 “도전과 열정이 넘치는 창의적인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진정한 초일류 기업,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업을 꼭 같이 만들자”며 “제가 그 앞에 설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줄곧 강조해 온 키워드는 ‘인재와 기술’이다.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하고, 미래 기술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있다고도 했다. “최고의 기술은 훌륭한 인재들이 만들어 낸다”며 인재와 기술의 중요성을 입에 달고 살았다.
“목숨걸고 하는 겁니다. 숫자는 모르겠고 앞만 보고 가는 거에요‘(2022년 5월 25일, 2022년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보고 오니 마음이 무겁다”(2021년 11월 24일 미국출장 후 귀국길)
“과거의 실적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2020년 신년사) 등도 세간에 알려졌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임팩트있는 ‘한방’은 떠오르지 않는다. 펜을 눈 앞에서 휘두르며 “마누라, 자식 빼고 싹 다 바꿔”라고 일갈하며 저절로 위기위식과 식은땀이 나게 만드는 ‘어록’은 기억나지 않는다.
사업은 당연히 ‘목숨걸고’ 해야 하고, 시장은 늘 ‘냉혹한 것’이 현실이다. 과거의 실적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것도 당연지사다.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선대회장은 "말하는 것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렸지만, 말하지 않는 법을 익히는 데는 60년이 걸렸다"는 말을 남겼다. 그동안은 부회장 신분으로 스스로를 낮추는 의미에서 강하게 말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제 이재용 회장은 삼성그룹을 이끌어야 하는 수장이다. 모두 이 회장의 입만 바라본다.
“마누라, 자식빼고 싹 다 바꿔”라는 강렬하면서도 내공이 담긴 돌직구가 필요한 시기다. 왕관을 쓴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 ‘왕관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오승주 산업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