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지난 2015년 10월18일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 앞바다인 사가미에서 해상자위대의 관함식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한국 해군이 다음달 6일 일본 해상자위대 70주년 국제 관함식에 참가한다. 관함식 참가는 2015년 이후 7년 만이다. 정부가 참가를 결정한 것은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관계 개선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다만 이번 행사를 주최하는 일본 해상자위대가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와 유사한 깃발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관함식 참여를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안보협력 강화 차원에서 관함식 참가를 결정했다고 했지만, 안보 차원의 실질적 이득도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방부와 해군은 이번 관함식에 전투함이 아닌 최신예 소양급 군수지원함인 소양함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소양함은 오는 29일 진해항을 출항해 다음달 1일 일본 요코스카항에 입항하게 된다. 6일 관함식 본행사에 참가한 후 참가국 함정들과 7일까지 '다국간 연합훈련'을 실시한다.
정부는 북한의 도발 위협에 맞서 한일 안보협력 강화를 표면적인 이유로 내세웠지만, 해군의 이번 관함식 참가는 윤 대통령의 한일관계 개선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은 이제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며 양국 간 민감한 과거사 의제는 제외한 채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냈다.
윤 대통령의 한일관계 개선 의지에 일본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9월 열린 유엔총회에서 진행된 한일 정상회담 일정을 두고 마지막까지 논란이 벌어진 게 대표적 사례다. 윤 대통령의 순방 이전 대통령실에서는 "유엔총회에서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당시 일본은 정상회담 여부조차 확인을 꺼렸다. 막판까지 성사 여부가 불투명했던 한일 정상회담은 결국 30분 '약식회담'으로 대체됐다. 윤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참석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친구들' 행사장이 있는 건물로 직접 찾아가는 방식으로 만남이 이뤄져 모양새도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고수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현재 심각한 안보위기에 정부는 한미동맹과 한미일 3자 안보협력을 포함한 국제 공조로 잘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북한 위협에 대응하는 두 축으로 한미동맹과 한미일 3자 안보협력을 설정했다. 이는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안보 차원에서도 일본과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됐다.
관건은 '욱일기 경례'로 치닫는다. 일본의 해상자위대 깃발은 일제시대 일본군이 썼던 욱일기를 그대로 계승했는데, 우리 해군이 관함식에서 국제 관례에 따라 이 깃발을 게양한 일본 함정에 '대함 경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권의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관함식 참가는 욱일기에 대한 국민정서를 무시하고, 오히려 일본의 재무장을 용인하는 것이란 게 주된 비판 이유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28일 일본 관함식 참석에 대해 "우리나라 해군이 욱일기를 단 함정에 경례하는 것이 맞는지 의심스럽다"며 "친일 DNA가 다시 살아나는 건가. 재고하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김희서 정의당 대변인은 전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욱일기가 펄럭이는 행사에 우리 해군이 참여하는 것은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일본의 재무장화를 용인하는 것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29일(현지시간) 마드리드 이페마(IFEMA)에서 열린 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윤 대통령이 거듭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일본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최근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서는 속도감 있게 협의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합의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피해자의 동의를 얻으려면 일본 기업의 사죄가 필요한데 이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 여론도 일본의 과거사 규명이 전제돼야 한일관계 개선에 의미가 있다는 만큼 정부가 일본 측의 사과를 받아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됐다. 앞서 지난 8월26일 발표된 뉴스토마토-미디어토마토 정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일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메시지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59.2%가 "강제징용, 위안부 등 명확한 과거사 규명이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37.3%는 "과거사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고 공감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정부는 '욱일기 경례' 논란에도 최근 엄중한 안보 환경을 고려해 안보상의 함의 차원에서 참가를 결정했다고 했고, 또 주변국 및 국제사회와의 해양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관함식 참가로 인해 안보상 얻을 실질적 이득이 별로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전 의원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관함식에)안 간다고 안보에 큰 이상이 생기는 게 아니고, 간다고 해서 안보에 큰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국민 자존심까지 훼손해가면서 도모할 안보 이익이라는 게 도무지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도 "(관함식이)안보에 도움이 되는 행사라기보다는 함정을 보유한 해군이 초청 받으면 참석할 수 있는 것"이라며 "안보 이익을 강조하는 것은 국제 관함식 성격에도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는 지금 초계기 문제도 해결이 안 된 상태다. 일본에서 공식적으로 우리 해군의 초계기와 관련한 내부 지침을 폐기하라고 상당히 적반하장식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마치 국제 관함식에 참가하지 않으면 안보에 큰 탈이 나는 것처럼 홍보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