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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17)사랑과 전쟁
입력 : 2022-10-28 오후 5:44:42
랑코베이는 바다와 숲이 우거진 웅장한 산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호수와 같이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와 바다 특유의 야성을 잃어버린 차분하고 정숙한 바다! 회랑처럼 좁은 길목만의 베트남의 남북을 이어준다. 아니다. 완벽하게 이어주었으면 바다가 아니라 호수였을 테지! 짧은 다리만이 남북을 이어준다. 쯔엉썬 산맥과 좁은 회랑에 둘러싸인 바다가 운무에 뒤덮여 비경을 보여줄 듯 보여주지 않는다.
 
엊저녁까지 나는 하이번 고개를 넘는 대신 터널을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조헌정 목사님이 억수로 내리는 비속에 하이번 고개를 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셨다. 게다가 얼마 전 태풍으로 산사태가 여러 군데 나서 위험하다는 소리를 못이기는 체 하고 따르기로 하였다. 새벽에 일어나 폭우 속을 달리다 보니 전투력이 다시 살아난다.
 
그건 아니다. 몸이 불편한 것을 핑계대고, 날씨 핑계대고, 지형 핑계 대다보면 핑계거리는 수 만 가지도 넘는다. 가자! 무소의 뿔처럼 앞만 보고 가자! 가다 넘어지고 자빠져도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야 감동이 있지! 감동을 잃어버리면 내 평화마라톤은 단팥 없는 찐빵이 되고 만다.
 
하이번 고개에 있는 해운관은 베트남의 남과 북을 나누는 관문으로 해발 1,172m이다. 베트남 서부를 남북으로 길게 뻗은 쯔엉썬 산맥이 이곳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가 하이번 곳이 된다. 디스커버리 선정 세계 10대 비경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폭우를 쏟아 붓는 비구름이 비경을 보여줄 리 만무하다. 본 것이라고는 산사태로 군데군데 집채만 한 바위돌이 산 도적처럼 버티고 서있는 겁나는 장면뿐이었다. 1968년 구정대공세 때 후에를 잠시 점령했던 인민군들이 미군기지가 있던 다낭에 쳐들어오기 위해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성문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하이번 고개는 베트남에서 가장 길고, 가장 높은 고갯길이다. Hai는 바다를, Van은 구름을 즉 `바다에서 온 구름` 이라는 뜻으로 항상 구름이 고개에 걸려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북쪽은 4계절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남쪽은 건기와 우기로 나뉜다. 이 산맥이 중국해의 북서풍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하이번 고개는 베트남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이자 아름다운 해안 도로로 손꼽힌다. 
 
이 고개는 군사적, 지리적으로 요충지가 되었다. 일찍이 중국의 한나라 장군 마원이 베트남을 평정한 후 이곳을 경계로 삼았다. 또한 15세기에는 비엣 족의 쩐 왕조와 참파 왕국의 국경이었다. 또 내전 때는 남베트남군이 북베트남군을 막아내는 최후저지선이었다. 옛날 프랑스 식민시대 이곳에 요새를 구축했고 그 후 미군이 이곳에 관측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나는 폭우 속에 체온을 유지하기 위하여 스포츠브라 만하게 자른 우비만 걸치고 고갯길을 내려오면서 ‘전쟁과 사랑’을 생각하였다. 비의 음기는 전쟁에 대비되는 사랑을 떠올리게 하였다. 문득 ‘옛날 짝사랑하던 여인을 한번 만나볼 수 있다면?’하는 엉뚱한 생각 말이다.
 
어느 나라에도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더 비극적이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시장은 단순한 물건을 사고 파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고 축제나 공연이 벌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베트남 북부의 카우 바이 정(情)시장은 일 년에 단 한 번 장이 열린다. 이곳에서는 옛날 이루지 못한 연인끼리 만나 거리낌 없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곳이다. 누구나 못 이룬 사랑을 일 년 후 혹은 몇 년 뒤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상상을 해보았으리라! 비록 비련의 사랑이지만 일 년에 한 번 그곳에 들르면 언젠가는 그 임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희망이란 인생의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오징어, 땅콩이다. 만나서 지난 삶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그리움을 확인하고 싶기도 하다. 누구나 한번은 옛사랑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해지기도 한 것은 인지상정인가보다.
 
‘바’라는 허몽 족 총각과 ‘웃’이라는 자이족 소녀가 어느 순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지만 두 부족은 서로 원수지간이라 혼인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달밤에 만나 가출하여 카우 바이 산의 동굴에서 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나 이 일로 두 종족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어찌하리오! 자신들의 사랑 때문에 부모형제와 이웃이 서로 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벌어졌다. 결국 두 사람은 영원을 맹세한 사랑을 포기하기로 결정하였다.
 
두 사람은 눈물어린 이별을 하면서 사랑만은 영원히 잊지 말자고 맹세하고 일 년에 한 번만이라도 헤어지던 3월 17일 이 장소에서 만나자고 했다. 약속대로 두 사람은 일 년에 한 번씩 카우 바이에서 만나 밤새 애달픈 일 년 치의 사랑을 나눈다. 자신들도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사랑에 감동해서 헤어지던 날과 장소에 장을 만들었다. 이 장터는 이루지 못한 사랑을 했던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시 만나 옛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랑의 장터이다.
 
‘후에’에는 후엔쩐 공주의 사당이 있다. 후엔쩐 공주는 쩐 왕국의 3대 황제인 인종의 딸이자 4대 황제인 영종의 누이이다. 쩐 왕국과 남쪽의 참파 왕국은 눈만 뜨면 전쟁을 하는 앙숙이었다. 참파왕국의 자야싱바르만 3세는 전쟁이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쩐 왕국의 공주가 경국지색이란 말을 들었다. 그는 전쟁대신 사랑을 택했다. 전쟁보다 사랑을 택한 것만은 훌륭했지만 값은 컸다. 이 결혼 선물로 꽝치 성과 꽝남 성의 드넓은 땅을 넘겨주었다.
 
여인의 아름다움에 빠져 나라의 근본인 땅과 백성을, 그것도 쩐의 남진을 막아주던 천해의 요새와 평야를 넘겨준 사랑밖에 모르는 어리석은 왕은 결혼한 지 1년 후에 요절했다. 참파는 힌두교 문명을 받아들인 나라이다. 후엔쩐 공주는 힌두교의 관습에 따라 죽은 남편과 함께 불길에 몸을 던져 함께 산 채로 화장을 당하게 생겼다. 공주가 순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쩐 왕국은 조문을 구실로 사신을 보내 공주를 탈출시켰다. 두 나라는 다시 전쟁을 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세계 6대 해변 중의 하나라는 미케 비치의 가장 전낭 좋은 한 해산물 식당에서 근사한 점심을 즐기는 중이다. 하노이에서 장은숙 한인회장이 내려와 내 발걸음을 위로한다면 쏘신 자리이다. 한국에서도 이한용, 양길현, 유원진, 장은주, 원애리 님이 응뤈와 주셨고 어젯저녁 자리를 만든 김만식 다낭 회장님도 자리를 빛내주었다. 오늘 하루는 우기 중에도 비가 잠시 멈췄다.
 
전쟁의 포연이 멈춘 미케 해변의 두 마리 하얀 갈매기 날갯짓이 희망차게 보인다.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평화달리기 26일차인 지난 26일 다낭 미케비치의 한 식당에서 장은숙 하노이한인회장, 김만식 다낭한인회장 등과 오찬을 하고 있다. (사진=강명구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최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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