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국내 경기가 본격적인 수축 국면에 접어들어 2024년 2분기까지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므로 이에 대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는 1일 '현 경기 국면에 대한 진단 및 정책 과제' 보고서를 통해 국내 경기가 수축 국면에 접어들고 있으며, 그간 우리 경제의 수축기가 평균적으로 18개월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2024년 2분기까지도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현재의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가 7월 101.8, 8월 102.3, 9월 102.4를 기록하면서 상승 흐름을 이어가다가 10월에 보합을 나타냈고, 올해 11월~12월 중 하락 전환될 것으로 예상했다. 동행종합지수는 고용·생산·소비·투자·대외 여건을 보여주는 지표로 구성되며, 최근의 상승세는 수입 물가가 높은 수준을 이어가면서 수입액이 많이 증가하고 서비스업 생산과 소비가 다소 회복된 것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경기 순환에 앞서 변동하는 지표로 구성된 선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해 6월 101.9에서 올해 10월 99.2에 이르기까지 이미 하락하고 있으며, 최근의 악화한 경기 여건을 고려하면 조만간 동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도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국내외 경제는 올해 들어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화되면서 고강도 긴축에 나섰고, 한국은행도 올해 초 1.0%였던 기준금리를 3.0%까지 인상했다. 기준금리 인상은 인플레이션 고착화를 방지하려는 목적이 있지만, 실물경제 위축을 초래하고 취약 부문의 부담을 가중하는 영향을 동반한다.
일례로 가계는 금리가 상승하면 현재의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경향이 있으며, 이자 부담 증가와 함께 부채 위험이 확대된다. 기업도 금리 상승에 따라 자금 조달 비용이 상승하고 투자 수요가 위축돼 자금난이 심화할 수 있다.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의 한 은행 앞에 대출금리 안내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사진=뉴시스)
강력한 긴축 동반 영향 경기 단기 급락 가능성
보고서는 이번 경기 수축기의 경우 전례 없이 강력한 긴축이 동반돼 경기가 단기에 급락할 가능성이 있고, 부채가 누증됨에 따라 경기 수축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국내 기준금리는 지난해 8월 이후 코로나19 시기의 완화적 통화 정책이 정상화되는 과정에 있었고, 올해 7월과 10월에 이르러서는 각각 0.5%포인트씩 인상되는 빅스텝이 단행됐다"며 "또 일반적으로 통화 정책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파급 시차가 적어도 2분기이고, 3분기 내외로 그 효과가 최고 수준에 도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7월부터 시작된 고강도 긴축의 영향이 내년 1분기쯤 본격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경제는 지난해 이후 코로나19 방역 조처 완화와 함께 대면 서비스업(음식·숙박, 오락문화)과 준내구재(의류, 신발 등) 소비가 회복을 이끌어 왔지만, 올해 6월부터는 소비자심리지수가 크게 하락하고 있다. 또 금리가 크게 상승하면서 가계의 이자 부담이 증가하고 자산 가격이 하락하는 등 소비 여력을 더 약화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그동안 누적된 전기·도시가스 요금 인상 압력이 현실화하면 이와 같은 영향이 심화할 것으로 봤다.
설비 투자는 내년 세계 경기가 둔화하는 가운데 기업의 자본 조달 비용과 환율이 높은 수준에 머물면서 수입 의존도가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부진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의 글로벌 수요가 둔화하고 가격이 하락하면서 해당 부문의 투자 심리가 악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보고서는 올해 1월1일~11월20일 중 무역수지 적자가 400억달러에 달한다면서 이는 1996년 IMF 사태와 2008년 금융 위기 시기에 각각 기록한 연간 206억달러와 132억달러 적자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주요 교역국인 미국, 중국, 유로 지역에서 재화 수입 수요가 모두 위축돼 있어 이와 같은 추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무역수지 적자가 누적되면 환율 상승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적극적 정책 대응·성장 잠재력 확충 노력 주문
보고서는 경기가 단기에 급락할 위험을 방지하고 조속히 회복될 수 있도록 정책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중장기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글로벌 긴축이 지속하는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중국 갈등과 같은 글로벌 불안 요인도 여전히 진행 중이며, 가파른 금리 인상에 따른 미국 경제의 침체 가능성과 중국의 제로코로나 완화 여부 등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과 가계의 부채 위험이 심화하는 등 리스크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면 경기가 급락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기업은 금리 상승에 따라 차입을 통한 자본 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채권 시장에서의 투자 심리도 위축되면서 자금난이 확대되고 있다. 이에 보고서는 기업의 자금 경색을 완화하기 위한 조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며, 그중 총 20조원 규모 중 가용재원인 1조6000억원을 우선 가동하기로 한 채권시장안정펀드의 집행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글로벌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장기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경제의 저탄소화와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기업의 혁신과 기술 개발 투자를 촉진하고 관련 분야의 인력 양성을 지원하며, 현재 추진 중인 '공급망 기본법'을 조속히 제정해 에너지·원자재 공급 안정화 등을 지원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민경희 대한상의 SGI 연구위원은 "경기가 하락하고 있음을 경제 주체들이 이미 체감하고 있던 상황에서 대내외 여건들이 내년에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경기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타격받는 부문을 지원하고, 경제의 지속가능성과 공급망 안정화를 달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