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글로벌 콘텐츠사업자(CP)의 망이용료 지급 의무화 내용을 담은 7건의 망이용료 법안이 국회에 표류 중이다. 연내 처리가 불투명한 가운데 망중립성 법제화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정부 개정안이 공개됐다. 글로벌 CP와 망이용료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인터넷사업자(ISP)들의 경우 높아진 망중립성의 법적 구속력으로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 망중립성 법제화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망중립성과 관련된 기본 원칙이 현행 가이드라인에서 법제화로 강화될 경우 글로벌 흐름과 역행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망 이용계약 체결 및 이용대가 지불과 관련된 법안은 7건이 계류 중이다. 2020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이 발의한 이후 지난해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 무소속 양정숙 의원이 차례로 법안을 발의했고, 지난 4월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과 9월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도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병합처리 여부 논의와 관계부처 의견 수렴 등에 나서 입법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21대 후반기 국회 원 구성 이후 법안을 발의한 의원 4명의 상임위원회가 변경되면서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공영방송의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 절차를 바꾸는 방송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충돌하고 있어 망이용료법에 대한 논의도 계속 밀리고 있다. 지난달 세차례 열린 과방위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는 물론 이날 열린 전체회의에도 관련 안건이 올라가지 못했다. 과방위 관계자는 "쟁점 법안에 대한 논의가 밀리고 있어 (망이용료법의)연내 처리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안이 표류 중인 가운데 지난달 2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7월부터 전문가포럼을 구성해 내놓은 전기통신사업법 전면개정안을 공개했다. 이 안에는 기간·부가통신사업자 모두 해당되는 망이용 기본원칙이 포함됐다. 망중립성 위반·분쟁 발생 시 실효성 있는 집행·조정이 가능하도록 현행 가이드라인상 최소한의 기본원칙을 법률로 규정한다는 내용이다. 지난 2012년부터 가이드라인 형태로 시행되고 있는 망중립성 원칙을 법제화해, 망중립성의 구속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글로벌 대표 빅테크 기업 로고. (사진=뉴시스)
이에 대해 ISP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국내 통신 사업자들은 대형 CP에 대해 망 사용을 차단한 적이 없고 가이드라인에 맞게 망 중립성을 잘 지켜왔다"면서 "법제화로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망중립성의 법제화보다는 망 이용과 제공에 대한 원칙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다른 관계자는 "글로벌 CP들이 서비스 독점력을 이용해 영향력이 계속 커지고 있는 통신환경과 향후 망고도화를 위한 투자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을 고려할 때 망중립성보다는 망의 이용과 제공을 위한 공정원칙과 관련된 법제화가 더 시급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망중립성의 법제화는 규제 완화라는 글로벌 흐름과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의 미디어 정책기관인 오프컴(Ofcom)은 망중립성 규제를 재검토해 망이용대가 부과 근거 찾기에 나섰다. 2016년 수립돼 실행 중인 유럽연합(EU) 망중립성 정책을 재검토, 새로운 환경에 맞는 정책 수립을 예고했다. 최근 발표한 컨설턴트 보고서에는 ISP가 투자 및 혁신 주체로 활동할 수 있도록 망중립성 규제 대부분의 완화를 제안하고, 입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제시하기도 했다. 인터넷 생태계 변화를 감지한 미국과 유럽연합(EU)도 생태계의 장기적 성장 지원을 위해 디지털 인프라 투자에 대한 올바른 대가가 마련되도록 논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때문에 망중립성 법제화에 대한 신중론도 적지 않은 모습이다. 전기통신사업법 전면개정안 토론회에서 권오상 미디어미래연구소 센터장은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이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어떤 점이 부족해서 어떤 게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법률안으로 만드는 것인가 이유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망중립성이 이념이나 철학이 아닌 정책적 도구에 불과하다"며 "도구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해 봤을 때 망중립성을 법제화해 어떤 효과가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우선돼야 하며, 전반적인 중립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