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본질이자 형상을 의미할 때 존재의 참모습인 '이데아'를 빼놓을 수 없다. 이데아를 감각에만 의존한 이상주의 영역으로 보는 경향이 짙지만 지성을 지닌 인간 사물의 참모습을 존재 의미로 둔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의 이데아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 중 동굴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동굴 밖에 살아가는 세계의 이분법적 분류는 올바른 판단을 위한 보편적 진리의 통찰력과 이성적 발달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특히 동굴안 그림자에서 벗어나 바깥 세계로 이끌 국가의 통치권자는 정책 수립에 있어 동굴 밖 '선의 이데아'를 근거로 둬야한다. 하지만 오늘날 철인정치는 이를 설파할 대변자가 없다. 탐욕과 이기심으로 상대주의를 내세우는 궤변론자들만 판을 치는 소피스트 후예가 넘쳐나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설득의 세 가지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분별과 이성을 의미하는 로고스(논리)와 사회적 약자들의 감정을 경청하거나 대중과 공감하려는 파토스(정념), 성품이나 소질을 의미하는 에토스(자질)가 말이다.
궤변론자들은 뭔가 잘못됐을 때 항상 비난할 대상을 지목한다. 그러곤 여론지형을 바꾸기 위해 지식을 이용한 다른 관찰점으로 둔갑시키기 일쑤다. 민심은 아랑곳없이 주구장창 전 정권 탓만 하는 식물 정치는 그렇다 치자, 도전과 도약의 경제개발 60주년 정신은 어디로 갔는지 정부도 남 탓하는 식물 정치를 닮아가는 듯하다.
대한민국호를 이끌기 위해 올해 5월 윤석열 정부가 출항했지만 올해 경제 성적표는 사실상 낙제점이다. '신냉전' 격랑으로 빚어진 경제 난관 등 글로벌 정세만 탓하기엔 경제 지표의 난맥상이 방증하고 있다.
지난 7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민의 삶이 정말 팍팍한 상황인데 2∼3개월 동안 조금만 참으시면 나아질 수 있다”며 물가 안정 최우선을 공언해왔다.
하지만 근원물가를 보면 계속 오름세다. 근원물가는 대외 충격으로 급증하는 품목을 제외한 물가다. 올해 1월 2.6%를 기록했던 근원물가 상승률은 8월 4.0%, 9월 4.1%, 10월 4.2%, 11월 4.3%로 오름폭이 커지고 있다.
이미 미국과 유럽(독일) 물가는 정점 후 상승률 둔화를 맞고 있는데 우린 상방 압력이 여전하고 더디다. 대외 충격만을 탓할 수 없는 요인이 지적되고 있다. 그나마 관리 물가인 공공서비스, 전기·가스·수도, 휴대전화료 등을 잡고 있다지만 내년 인상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 10일 주말 산업부가 깜짝 발표한 '올해 누적 수출액 최고 경신' 건도 따지고 보면 이번 정부의 수출 성적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 1월 수출은 전년과 비교해 15.2%, 2월 20.6%, 3월 18.2%, 4월 12.9%, 5월 21.3%를 기록한 바 있다.
이후 바통을 이어받은 윤 정부 집권의 수출 성적표는 6월 5.2%, 7월 9.2%, 8월 6.6%, 9월 2.7%, 10월 -5.7%, 11월 -14%, 12월(10일까지) -20.8%로 처참하다.
물가 잡겠다고 금리는 올리면서 레고랜드발 자금경색으로 유동성은 더 풀어야하니 웃픈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내년 1%대 저성장이 유력한 상황에서 정부의 기업 인센티브가 투자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기업들의 유보금만 쌓을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다. 별안간 통계 조작 의혹 주장까지 나오면서 공직사회의 분위기는 더욱 냉랭하다. 인구 구조의 변화로 표본조사의 방식은 늘 바뀔 수밖에 없다. 역대 정부에서도 보완, 개선의 개편 작업은 늘 있어왔다고 말한다.
왜 화살이 공직사회를 향해있는지 정쟁을 바라보는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회의감과 불만의 소리만 높아지고 있다. '행정 정치화·정치 사법화'를 경계해야한다는 역대 경제부총리들의 고견을 새겨 듣긴커녕 내년엔 또 무슨 탓을 내밀지 '선의 이데아'는 더욱 멀어지고 있다.
이규하 경제부장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