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서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불붙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조선일보 인터뷰를 통해서 ‘중·대선거구제’를 언급했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3월까지 선거제도 논의를 마무리하자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이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정치권과 언론의 선거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 있다.
대표적인 것이 ‘중·대선거구제’라는 용어이다. 일반적으로 중선거구제는 1개 선거구에서 2-4명 정도를 선출하는 것이고, 대선거구제는 5명 이상을 선출하는 것이라고 설명된다. 1개 선거구에서 선출되는 의석수의 차이는 실제 선거결과에서 매우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뒤에서 설명하는 의석배분 방식과 결합하면 차이는 더 커진다. 따라서 중선거구제와 대선거구제를 묶어서 ‘중·대선거구제’라고 부르는 것은 더 이상 적절하지 못하다.
그리고 지금 거론되는 단순 중선거구제로는 표의 등가성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지역주의를 깨기도 어렵다. 오히려 거대양당의 기득권구조를 강화시킬 우려도 있다. 현재 기초지방의원 선거에서 1개 선거구당 2-4명을 선출하고 있지만, 수도권에서는 거대양당의 나눠먹기가 이뤄지고, 영·호남에서도 열세정당이 당선되는 확률은 미미한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1개 지역선거구에서 후보중심으로 선거를 하여 여러 명이 당선된다는 의미의 중선거구제는 시행된 사례가 별로 없는 선거제도이다. 이론적으로는 단기비이양식(single non-transferable vote)이라고 하는데, 과거 일본에서 시행됐다가 여러 문제점으로 폐지된 바 있다. 한국에서도 군사독재정권 시절 1개 선거구에서 2명을 선출한 적이 있다. 정치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에서는 채택하지 않는 제도이다.
반면 대선거구제는 비례대표제와 결합되기 쉽다. 후보중심으로 치르는 단순 지역구 선거에서 5등, 6등까지 당선되게 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선거구제는 1개 선거구에서 많은 숫자의 의원을 뽑되,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이다.
가령 10명을 선출하는 대선거구가 있다면, 각 정당이 그 선거구에서 얻은 득표율대로 일단 의석을 배분한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30%를 얻은 정당은 3석을 배분받는 것이다. 이렇게 배분받은 의석의 범위 내에서 누구를 의원으로 당선시킬 지와 관련해서는 두가지 방식이 있다.
우선 정당이 정한 순번대로 국회의원이 되는 방식(폐쇄형 명부)이 있다. 우리가 익숙한 방식이다. 그러나 다른 방식도 있다. 투표용지에서 유권자들이 정당뿐만 아니라 후보까지도 선택할 수 있게 하여 유권자의 선택을 당선자 결정에 반영하는 방식(개방형 명부)도 있다.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같은 나라는 후자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집중적인 논의가 필요한 선거제도는 중선거구제일까, 대선거구제일까? 1개 선거구에서 2명이나 3명 정도를 뽑는 중선거구제는 거대양당의 기득권구조를 오히려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지역일당지배체제 극복도 어렵다. 최소한 4명 이상을 뽑아야 표의 등가성 확보나 지역주의 극복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1개 선거구에서 4명 이상을 뽑으면 선거비용도 많이 들고, 금권선거, 파벌정치같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후보중심 선거여서 정당의 기능이 약화될 우려도 있다.
그렇다면 논의가 더 필요한 것은 대선거구제이다. 대선거구제는 비례대표제와 결합될 수 있는 선거방식이다. 그렇게 하면 정책중심, 정당중심의 선거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표의 등가성이 보장된다. 현재의 국회의원 지역구 253석을 대선거구에서 선출하고, 비례대표 47석은 표의 등가성을 보다 확실하게 보장하는 조정의석으로 전환하면, 소수정당도 득표율만큼 의석을 보장받을 수 있다. 정책으로 경쟁하는 다당제 구조가 정착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1개 대선거구에서 5명 이상을 선출하면, 대구·경북에서도 민주당이, 호남에서도 국민의힘이 의석을 얻을 수 있다. 지역일당지배체제가 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개방형 명부 방식을 채택하면, 유권자들이 정당만이 아니라 후보까지 선택할 수 있다. 유권자의 선택권이 확대되고 정당의 공천개혁에도 도움이 된다.
물론 필자의 의견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제도는 워낙 중요한 문제이므로, 보다 정확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더 이상 ‘중·대선거구제’라고 애매하게 묶어서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