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접한 지하철 실버택배원 얘기는 가슴을 울렸습니다. 공공기관에서 정년퇴직한 할아버지는 마땅한 소일거리를 찾지 못한 채 지내왔습니다. 경로당도 가보고 여행도 다녔지만, 사회의 잉여자원이 된 듯한 느낌이 할아버지를 사로잡으며 건강도 차츰 악화됐습니다.
할아버지는 새 일자리로 지하철 실버택배를 얻었습니다. 한 달 수입이 50만원에 불과해도 할아버지에겐 어엿한 직장입니다. 비록 거리에서 김밥을 먹고 악덕 손님도 만나지만, 오히려 할아버지는 미소와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아직 세상에 내가 할 일이 있으니 돈 몇 푼 받는 건 중요하지 않다”며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한 켠으론 일반 택배보다 실버택배가 저렴한 이유는 ‘노인 무임수송’이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라 씁쓸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횟수와 거리에 상관없이 지하철 탑승이 무료입니다. 실버택배 할아버지처럼 하루에 수십번을 타도 되고, 춘천에 닭갈비를 먹으러 가도, 천안에 호두과자를 먹으러 가도 됩니다.
취지야 십분 공감하지만, 부작용도 있습니다. 실버택배처럼 편익을 사기업이 취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몇몇 사람들은 공짜로 탄다고 노인들에게 손가락질하기도 합니다.
사회가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제도가 도입된 1984년보다 지금 서울 노인인구가 7배 늘었습니다. 어느덧 승객 100명 중 15명은 무임 승객입니다. 그러다보니 지하철 운영기관의 부담도 덩달아 늘었습니다.
최근 대구와 서울 등지에서 노인 무임수송 제도를 개선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누적된 부담이 상당하니 이번 기회에 지자체에만 부담을 전가하지 말고, 제도 취지에 맞춰 국가에서 일부라도 보전해달랍니다.
아예 노인 기준을 70세로 올리자는 얘기도 있습니다. 출근시간에만 돈을 받는 것도 방법입니다. 노인만 힘드냐면서 저소득층이나 청소년도 무료로 태워달란 말까지 나옵니다.
어느 것도 100% 틀린 얘기는 없지만, 쉽게 마음이 가지 않는 이유는 실버택배 할아버지 같은 이들에게 무임수송이 결과적으로나마 긍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노인 자살률 1위라는 오명 속에 살고 있습니다.
노인 빈곤은 우리가 눈 감고 싶은 현실입니다. 기댈 수 있는 사회안전망도 딱히 안 보이고 각자 연금상품이라도 가입하거나 그 전에 부자가 되는 것을 권하는 사회입니다. 각자도생이란 말은 노년층에게 가장 가혹하게 다가옵니다.
60세면 은퇴를 한다는데 120세 시대랍니다. 빠르면 70대, 늦으면 80대부터는 자가 운전도 어려워집니다. 이럴 때 병원이라도 가려면 대중교통밖에 기댈 곳이 없습니다.
사회적 합의만 된다면 노인 연령을 올려도 좋고, 출퇴근시간 유료화도 좋습니다. 전체 노인을 50% 할인할 것이냐, 어려운 노인만 100% 할인할 것이냐도 얘기해볼만 합니다.
다만, 그 전에 노인 빈곤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으면 합니다. 일자리든 소득 보전이든 개인이 아닌 사회 차원에서 움직일 때입니다. '너희는 안 늙을 줄 아냐'는 얘기가 시쳇말처럼 들리지 않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