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하게 뜯어 먹은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불렸고, 혹독하게 뜯어 먹힌 인도는 비렁뱅이 나라라고 불렸습니다.
가난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은 자유롭습니다. 욕심을 버렸으니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니 마음이 풍요롭습니다. 그들은 강한 사람들입니다. 적게 먹고도 많이 힘써야 합니다. 세상은 기울어진 저울입니다. 많이 일하고도 아주 작게 법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저 들판의 반얀 나무처럼 그 자리에서 조용히 그들의 운명에 순응하며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애써 외면한 채 말입니다.
우리의 삶을 이어온 힘은 세상에서 가장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등불을 찾아내고, 가장 고통스러운 일 속에서도 기쁨의 알맹이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어차피 가진 것이 없으니 그들은 아낌없이 나누며, 형제 간에 가족 간에 의가 좋습니다.
진정 가난한 사람은 줄 사랑도 받을 사랑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다고 느껴질 때 오는 고독감은 삶을 온통 헐벗고 궁핍하고, 앙상하게 마른 고목나무처럼 만듭니다. 봄이 와봐야 새순도 돋아낼 수 없는, 가슴 뜨거운 꿈조차 꾸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부자가 아닌 사람은 영원히 부자가 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자본이 자본을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말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처럼 맨발로도 위대한 발걸음을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사랑이 모여 큰 사랑이 되고, 가난한 마음으로 위대한 생각을 하고, 위대한 사랑의 발걸음으로 작은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경제학자이자 ‘그라민 은행’의 설립자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가 그 사람입니다. 그는 가난에 대해서 고민을 한 몇 안 되는 기득권자입니다. 가난한 나라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나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치타공 대학 경제학과 교수였던 유뉴스는 가난한 사람들이 담보나 보증 없어서 자립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소액 신용 대출을 해주는 것을 시작으로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그라민 은행을 설립했습니다.
“명석한 경제학자들은 대개 가난이나 기근과 같은 문제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국가 경제가 발전하면 그런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이 된다고 생각을 하는 듯합니다. 그들은 발전이나 번영을 위해서라면 모든 힘을 쏟아 부우면서도, 가난이나 기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여겨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저는 전 세계가 가난 퇴치를 최우선의 과제 중 하나로 여긴다면, 우리 모두가 오늘날처럼 부끄러운 처지에서 벗어나 자랑스럽게 세계 건설에 매진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는 제일 먼저 편견과 맞싸워야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보다 자기 주인을 섬기는 노예근성이 있습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액 융자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누스는 그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더 신뢰할 수 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몇 달러도 안 되는 작은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유누스가 내딛은 한걸음은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가난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는 희망을 주었고, 지금은 전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자기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면 더 행복하다.” 마더 테레사가 한 말입니다. 먹을 것이 없는 자를 위해 먹을 것을 주고, 잘 곳이 없는 자에게 사랑의 집을, 병든 자에게 나음을 주고자 일생을 바쳐 헌신하신 분입니다. 세상은 그에게 하찮은 노벨평화상을 수여했지만, 진정한 하늘의 상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르는 마더라는 호칭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는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는 200여 년간의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인도는 여러 상황이 맞물려 사회는 불안정했고 거리에는 난민들이 넘쳐났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굶주림과 병마 속에서 죽어갔습니다. 그때 그는 가난한 땅 인도에 가난하고 병들어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안식과 위안을 주고자 왔습니다.
‘허리를 굽혀 섬기는 자는 위를 보지 않는다.’며 자신의 몸을 가장 낮은 데로 낮추어 인류애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고 몸으로 실천한 사람, 사람들은 그를 마더 테레사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있었기에 20세기 전쟁과 살육의 인류 역사는 몇 촉 정도는 더 밝아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끊임없는 자기희생으로 각박한 현대 인류사에 빛나는 정신을 보여주었던 그는 것에 목표를 삼았습니다.
마더 테레사 효과는 봉사를 할 때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말합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연구진이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대가를 받고 봉사에 참여한 그룹과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을 한 두 그룹을 봉사활동 후 체내 면역 기능 변화를 검사했습니다. 자발적 봉사활동에 참여한 그룹이 면역 기능이 월등히 높아졌고 유해 병균을 물리치는 항생물질이 셍겼다고 합니다.
부디 평화의 길을 택하십시오.
단기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이 전쟁에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들의 무기가 가져올 고통과 참상,
생명의 손실을 절대 정당화하지 못할 것입니다.
- 마더 테레사 -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한평생 남의 눈물을 닦아주고, 고통을 나누며,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는, 끝없는 나눔의 삶을 실천하며 살아온 박청수 교무입니다. 무아봉공(無我奉公)은 부처님의 가르침의 정수입니다. 나를 없애고 공(公)을 받드는 원불교의 공도(公道) 정신입니다. 사람들이 왜 그를 ‘마더 박청수’라 부르는지 궁금증을 푸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는 종교 간의 높은 벽도 허물고 31년 동안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성(聖)라자로 마을 한센병 환자들을 돕는 일을 헌신적으로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했던 것이 55개국을 돌며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의 아파하는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가서 그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따스한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무지한 이들을 위해서는 학교를. 아파하는 이를 위해서는 병원과 약품을, 배고픈 이들에게는 빵을, 목마른 이들에게는 우물을,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을 위해서는 고아원을 지어주었습니다.
무아봉공(無我奉公)을 몸으로 실천하는 이런 사람들 덕분에 ‘가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로 가는 길을 달리면서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들판에서 외쳐봅니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편견을 깨고 기득권에 집착을 내려놓고 “다 같이 나누고 다 같이 잘 살자!”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평화달리기 132일째인 지난 9일 인도의 주민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강명구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