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한발 없는 전쟁터가 자본시장이라지만 하이브와 카카오의 에스엠 인수전이 이제는 누구도 양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네요. 하이브가 에스엠 주식 공개매수에서 0.98% 지분 확보에 그쳤다는 발표가 나오자마자 카카오가 1조2500억원을 들여 에스엠 주식을 주당 15만원에 공개매수한다고 발표하면서죠. 카카오는 최대 35%의 에스엠 지분을 공개매수를 통해 확보한다는 복안입니다.
이 소식에 에스엠 주가는 당연히 급등했죠. 13만원대에서 단숨에 공개매수가를 목전에 둔 14만9700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이쯤되니 지난달말 하이브가 공개매수 12만원 카드를 던졌던 그때 실패한 이유를 봐야할 듯 하네요. 하이브는 카카오 측의 방해로 공개매수가 실패해서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금감원에 조사를 요청해둔 상황입니다.
공개 매수 실패 배경은 12만원을 상회한 주가 흐름이 이어졌기 때문이 큽니다. 2월 중순경 에스엠 주가는 하이브가 제시한 공개매수 가격 12만원을 단숨에 넘겨버리죠. 장내 가격이 12만원을 넘어 13만원대까지 오르면서 결국 하이브의 공개매수에 응할 이유가 사라진 셈이죠. 실제 하이브는 공식발표를 통해 공개매수에서 23만3817주(0.98%)가 응했다고 했죠. 목표치(25%)에도 크게 미달했습니다.
이번에 발표된 카카오의 공개매수 신고서에 보면 카카오와 카카오엔터는 하이브가 공개매수를 진행한 시점에 주식을 매입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다만, 가격이 하이브가 제시했던 12만원 보다 높았던 수준이란 게 눈에 들어옵니다. 신고서에 따르면 카카오엔터는 지난달말 주당 평균매입단가는 12만6200원, 카카오는 지난달말과 이달 2~3일에 걸쳐 주당 12만1325원, 12만8750원, 12만6746원에 에스엠 주식을 매입했습니다. 공개매수신고서를 제출한 날을 기준으로 카카오의 에스엠 지분율은 3.28%, 카카오엔터는 1.63% 확보했네요. 평균매입가격이 12만원을 웃돌면서 결국 하이브의 공개매수 가격 12만원의 매력이 사라진 셈이죠.
하이브 측은 지난달 16일 IBK투자증권 분당지점을 통해 기타법인이 에스엠 주식을 대규모로 매집한데 대해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가 있다며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한 상황입니다. 금감원의 조사 결과 발표가 언제 나올지 주목되는데, 현재 분위기라면 이번달 주총이 끝난 다음에 발표될 개연성이 높아 보입니다. 어차피 이번 정기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주주들은 지난해말 기준으로 에스엠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이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특정 기업의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금감원이 개입하는 모습이 오해의 소지를 불러올 수 있으니까요.
카카오가 대반격에 나서면서 하이브 측도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하이브는 현재 국내외 엔터테인먼트 회사 및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투자금 최대 1조원을 유치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모건스탠리를 주관사로 정해 카카오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싱가포르 투자청으로부터 확보한 약 1조2000억원에 맞서는 실탄을 확보한다는 복안이죠.
두 회사 모두 1조원대 실탄을 장착한다면 에스엠 인수 전쟁(?)은 본격적인 쩐의 전쟁으로 진화할 듯 하네요. 고가 지분 인수에 따른 '승자의 저주' 이야기도 작용치 않는 모습입니다. 남은 카드는 아마도 하이브 측이 카카오가 제시한 금액과 동일하거나 이상의 가격으로 재차 공개매수에 나설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쩐의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최성남 증권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