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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50)나는 꽃이 아니다. 불꽃이다
입력 : 2023-03-09 오전 6:00:00
내 영혼에는 쥐구멍처럼 하루 종일, 태어나서 지금까지 볕이 안 드는 곳이 있습니다. 그 쥐구멍 속에 웅크려 있는 나는 겁이 많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위험한 존재입니다. 인도의 길 위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그 구석구석 볕을 쬐어주고 있습니다. 양말 두 켤레를 사고 계산을 마치고 돌아 나와서 한참을 왔는데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오면서 부르기에 돌아보았더니 그 사람 손에 백 루피짜리 지폐 두 장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가게도 비워 놓고 흘린 돈을 가지고 뛰어 온 것입니다. 그 젊은이의 거친 숨결이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나는 아마도 스스로 판 쥐구멍 한 군데를 움막의 거적 씌우듯이 덮어씌우고 자신을 그 안에 가둬버렸음이 분명합니다. 인도인들이 다가와서 내 쥐구멍에 뭐가 있을까 궁금해서 거적을 슬쩍 들췄을 뿐인데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옵니다. 나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왜 거적을 들췄냐고 화를 내든지, 들춰진 거적을 거두고 햇볕 가득한 벌판에 나오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나는 인도 여정이 끝나고도 아직도 많은 날들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왜 어리석게 쥐구멍 안에서 거적으로 구멍을 막고 어두운 가운데 살아야 하겠습니까?
 
유모차를 밀며 드넓은 세상을 다니면서 평화의 노래를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은 가슴 벅찬 나의 임무입니다. 그 여정 중 단 한 걸음도 더 나아가기 힘이 들 때 반얀 나무 그늘처럼 쉴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이 되고 안식처가 되어주고 기운이 샘솟도록 힘이 되어주는 인도의 아름다운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친절과 온정이 고통과 외로움, 좌절과 절망, 두려움과 막막함 가운데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새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헤르만 헤세의 말입니다. 그래서 천박한 편리함이나 아름다움만을 찾는 여행자들에게는 인도를 추천했다가 욕먹기 딱 좋을 것입니다. 새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 영혼의 안식이 필요한 여행자들이나, 특별한 영감이 필요한 예술가들이나, 새로운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종교인들이나 철학가, 히피들에게 안성맞춤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인도는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던 세이렌 자매의 노랫소리처럼 유혹의 소리로 매료시킵니다.
 
인도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은 대표적인 예가 헤르만 헤세와 비틀즈입니다. 헤세는 서른네 살의 나이로 삶의 터전인 호반의 도시 가이엔호펜을 떠나 그의 인생 중 가장 중요한 여행길에 오릅니다. 인도는 어린 시절부터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의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선교사로 포교 활동을 했던 곳이며 어머니가 태어나 성장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양친에게 인도 이야기를 들으며 그곳을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스물일곱 살 때부터 관심 있게 읽던 동양에 관한 이론적 인식을 실제 체험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여행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낯선 기후와 형편없는 식사, 열악한 위생 상태로 심한 설사와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그는 인도 본토의 남부 지역을 방문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4개월 뒤 돌아가게 됩니다. 그는 이 여정을 통해 자신의 지식과 생각이 더 풍부해졌고 동서양의 문화를 함께 통합할 수 있는 사상을 가질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여정은 그에게 인간 내면의 고뇌를 정적으로 바라보는 영적 성장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럽 사회 속에서 이방인이었고 스스로 왕따가 되었던 헤세는 방랑 끝에 도달한 동양에서 비로소 생의 본질을 찾게 된 것입니다. 인도여행 후 그는 평화주의자가 되었습니다. 마치 내사 미대륙횡단마라톤 후 평화주의자가 된 것 같이. 그 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데미안,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등은 그의 인도 여정 후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상황에 큰 상처를 받고 자신의 조국 빌헬름 2세를 비판하는 칼럼을 신문에 기고하였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헤세 열풍의 진원지가 데미안이었다면 서구에서는 황야의 이리와 싯다르타가 불러온 반향은 엄청났습니다. 헤세 생전에도 전쟁을 경험한 후 삶의 의미와 방향에 목말라 있던 젊은 세대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사후인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말 탈권위주의, 반전, 반핵, 환경 운동을 내세우며 미국 및 유럽 사회를 뒤흔들었던 68 학생운동 세대와 문명을 등지고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히피들이 바이블처럼 여기고 열독하면서 헤세 열풍을 선도했습니다.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사회적인 반항아였던 헤르만 헤세는 자기 존재를 통해 개인적이고 정신적인 삶의 불꽃이 되어 그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자본주의와 국가와 기득권과 싸우고, 엘리트주의를 거부하고,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반전반핵운동을 벌이고, 평화주의를 외치고, 환경운동의 선봉을 섰습니다. 
 
인도의 겨울은 우리네 겨울처럼 혹독하지는 않지만 가난한 난방시설이 없고 사방이 탁 트인 움막에서 담요 한 장 뒤집어쓰고 자는 이들에게는 그리 쉽게 나는 겨울이 아닌 듯합니다. 그것은 소똥 말리는 일에 열중하는 여인에 손길에서 읽혀지고, 밤새 떨며 자다 일어나 새벽이면 모닥불 앞에 삼삼오오 옹크려 앉은 사람들의 표정에서 나타납니다.
 
천국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 사람과 짐승이 같이 어울려 사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인도를 달리면서 이곳이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듭니다. 왜가리와 까치는 소와 염소의 잔등에 올라타서 오수를 즐기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개는 대로에서 팔자를 그리며 자다가 내가 달려가는 소리에 단잠을 깨서는 심통을 부리며 달려듭니다. 간혹 온순한 물소가 다가와 왕방울만안 눈을 더욱 크게 뜨고 나를 관찰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수줍어하면서도 호기심에 가득 차 나를 에워싸고 조잘거리는 아이들의 눈망울과 비슷한지 모르겠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육식을 안 합니다. 이 마을 저 마을 지나면서 식당에서 육식을 먹기란 하늘에서 별따기입니다. 기껏해야 닭고기 정도입니다. 물론 대도시야 사정이 다르겠지만 환생을 믿는 그들로서는 자기도 어느 생에 가축으로 태어날지 모르는데 고기를 먹고 이빨을 쑤시기가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멧돼지, 야생 공작새도 사람을 보면 그리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야생 공작새의 무리는 얼마나 아름답고 진귀하고 잊지 못할 모습이었던가요? 원숭이들도 마을 한복판에서 내가 다 신이 날 정도로 재미있게 유희를 즐깁니다. 이름 모를 새들의 형형색색 아름다운 모습과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면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주렁주렁 열린 바나나 열매, 끝없는 벌판에서 꽃같이 예쁜 사리를 입고 감자를 수확하는 여인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사람들의 검은 보석 같은 눈망울입니다. 가까이 다가가야만 느껴지는 친근한 숨결입니다.
 
나는 사람과 자연이 함께 건강한 생태적 삶의 전형을 인도에서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는 나라 전체가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치유의 휴양지인 셈입니다.
 
오늘의 강물은 어제 같은 모습으로 흐르다가 보이지 않는 형체로 하늘로 올라 히말라야 산 위에 눈으로 내리고, 물이 되어 갠지스 강에 흐른다. 사람들은 생을 영위하다 재가 되어 강물로 흐르다 하늘과 산의 순환  변천하는 물의 현상에 따라 더 나은 환생을 꿈꿉니다.
 
나는 꽃이 아닙니다. 힌두스탄 평원의 바람을 타고 세상 끝까지 번져나가고 싶은 불꽃입니다.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평화달리기 148일째인 지난달 25일 인도의 주민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강명구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박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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