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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읽기의 힘, 도서관의 힘
입력 : 2023-04-21 오전 6:00:00
하재영의 에세이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에는 다음의 구절이 나옵니다. “열렬히 읽는 삶이 그녀를 그녀이게 했다면,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사는 한 타인이 나를 훼손해도 나는 훼손당하지 않고, 타인이 나를 모욕해도 나는 모욕당하지 않으며, 타인이 나를 소멸시키려 해도 나는 소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끊이지 않는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늘 “희망을 버리지 않고 꼿꼿하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해온” 자신의 어머니가 내면을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읽기’였음을 설파합니다.
 
위의 구절이 유난히 오래도록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저 역시 비슷한 생각을 자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묻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책을 꾸준히 읽을 수 있냐고, 또는 왜 그리도 책을 열심히 읽느냐고. 사실 그러한 질문은 제가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 나는 읽는가. 혹은 주변인들에게, 아이들에게 왜 책을 읽으라고 말하는가. 왜 보다 많은 이들이 책을 읽는 세상이 되기를 희망하는가.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많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하게는 결국 ‘읽는 사람’에게는 힘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살면서 ‘읽기’가 저를 지켜주는 것을 느끼고 경험했기 때문에요.
 
그리 특별할 것도 뛰어날 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제 마음은 자주 풍파를 겪습니다. 이 세상의 다른 많은 이들처럼 살면서 좋은 일 만큼 괴로운 일 역시 많았고, 외로움, 두려움, 고통, 질시, 분노, 혼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하루에도 수차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이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릴 때마다 ‘읽기’가 저를 지탱해 주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혼자인 시간에 집중하는 동안, 부정적인 감정의 대부분은 한결 가라앉곤 했습니다. 물론 책을 읽는다고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놀랍게도 문제해결을 위해 필요한 용기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제가 처음부터 읽는 사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연히도 책이 많은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을 뿐이죠. 책을 좋아하시는 부모님과 어릴 때부터 도서관에 자주 다녔는데, 심심한 마음에 덩달아 거기 있던 책을 펼쳐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나날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고요. 이처럼 ‘읽기’의 힘을 실감하고, ‘읽는 사람’이 되기 위한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경험한 저로서는 도서관에 무척 관심이 많습니다. 보다 많은 시민이 보다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서관에 대한 접근성이 향상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합니다.
 
얼마 전 마포구에서 도서관의 일부를 독서실화하며 예산 삭감안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 도서관장에 대해서는 직위를 해제하고 해고를 위한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하고요. 아마도 위와 같은 안을 추진한 마포구청장은 도서관의 존재 목적이 ‘읽기’보다는 ‘시험’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사실 이런 시선이 새삼스럽지는 않습니다. 인문학, 예술, 독서와 같은 활동은 늘 ‘쓸데없는’ 활동으로 치부되곤 했으니까요. ‘돈이 되는’, ‘실용적인’, ‘경제적인’ 것들과는 다르게 ‘시간 낭비의’. ‘무용한’ 행위로요.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저는 ‘읽기’에는 아주 중요한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고난과 고통의 순간에 정신이 부서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공동체와 타인에 대한 사랑과 마지막 양심을 지켜줄 수 있는 힘이요. 당장은 무용해 보이지만 인간을 인간으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최후의 보루라고요. 부디 마포구의 도서관 정책이 재고되길 바랍니다.
 
한승혜 작가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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