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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6월에 386을 생각한다
입력 : 2023-06-13 오전 6:00:00
'386', '586'이란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운데 '8'은 80년대 대학을 다녔다는 의미다. 이 단어를 처음 쓰기 시작한 사람들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어쩔 수 없이 학력 차별의 전제가 깔려 있다. 
 
1980년대 대학 진학률은 1980년 23.7%에서 1985년 36.4%로 빠르게 증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3/4에서 2/3가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간 1/4이나 1/3은 개인의 탁월함 때문이든 집안의 뒷받침 때문이든 여러모로 선택과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386, 586은 1/4, 1/3이 3/4, 2/3을 배제하는 언어로서 윤리적으로 불편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지혜롭지 못한 운명을 타고났다. 
 
노태우 정부 이후 형식적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단계에서 386은 '개혁의 동력', '성장의 주춧돌'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낮에 돌 던지고 밤에 막걸리 마시며 열띤 토론을 벌이면서 학교 수업 따위는 간단히 무시해버렸다. 집시법,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훈장처럼 여겨졌다. 이렇게 대학 생활을 보냈어도 대기업이나 전문직 취업이 어렵지 않았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고급 인력의 수요가 급증했는데, 이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인적 자원이 386이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를 지나면서 급격한 민주주의의 흐름을 반대하는 정치세력과 언론은 386에 부정적 프레임을 덮어씌우기 시작했다. 참여정부 때 이들이 국정운영의 주도 세력이 되자 386 앞에 '무능의 고깔'을 씌워 공격했다. 그럴 때도 ‘386이 어때서’라는 논리로 내부를 옹호하거나 공격을 맞받아쳤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1/4, 1/3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을 바라보는 3/4, 2/3의 시선이 고깝지 않을 수 없었다. 
 
386은 이제 586이 됐고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국정운영의 전면에 나섰다. 비난의 레퍼토리는 참여정부 때와 비슷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여론의 수용도는 더 높아졌다. 윤석열 정부가 등장하면서 이제 구시대 정치를 상징하는 주홍 글씨가 되고 있다. 이런 공격이 먹히는 이유는 586으로 불리는 일부 세력이 기득권이 돼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과실을 오랫동안 독점해 왔고, 이제 아래 세대의 진출 기회마저 가로막고 있다는 통념이 전 세대에 걸쳐 넓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586 출신이 국민의힘에도 제법 있지만 늘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은 민주당이다. 민주화 운동을 한 경력으로 국민의힘 쪽에서 정치를 시작한 이유는 뭘까? 정치를 하고 싶어 민주당 쪽 문을 먼저 두드렸지만 민주당에는 너무 흔한 스펙이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면, 국민의힘 쪽에선 구색을 맞추는 데 필요했기 때문에 선뜻 기회를 준 것이었다. 386, 586은 그런 점에서 세대 담론을 위장한 정파 프레임이다. 
 
나 역시 586의 카테고리에 속해 있는 사람이다. 586에게 쏟아지는 모든 비난에 대해 눈을 부릅뜨기 어렵다. 어떤 대목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과도하게 쏟아지는 융단 폭격은 그저 나처럼 생활에 매몰된 사람에게도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게 만든다. 386, 586에 대한 비난 여론을 부추기고 거기에 편승하는 일부 정치인, 언론인, 학자의 행태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386, 586의 정체성은 결코 몇몇 정치인에게 있지 않다. 1987년 6월항쟁의 정신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레일이다. 386, 586에 대한 과도한 비난은 6월항쟁의 정신마저 침식하고 있다. 이제 386, 586이라는 차별의 언어가 아닌 ‘6월 세대’로 우리를 다시 명명해야 할 때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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