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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자신을 함부로 낮추지 마세요
입력 : 2023-06-19 오전 6:00:00
말하기와 글쓰기에 관한 책을 낸 뒤로, 기업체나 학교, 사회단체 요청으로 강의할 때가 있다. 강의에 ‘말과 글로 행복해지는 기술’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한번은 군대 부사관들을 상대로 강의했다. 부사관은 장교와 병사 사이에 있는 중간 집단이다. 하사 중사 상사 원사 계급이 있다.
 
그날 강의에서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를 지낸 아론 라자르의 저서 <사과 솔루션> 내용을 활용했다. 라자르는 이렇게 주장했다. 과거에 사과는 약자나 패배자가 비굴하게 굴복할 때 사용하는 언어였다. 권력자는 사과하지 않았다. 권력자가 사과하면 권위와 지도력이 떨어진다고 여겼다. 요즘은 달라졌다. 지도자와 승자가 기꺼이 사과한다. 왜 그럴까? 사과를 잘하면 갈등을 조정하기 쉬워진다. 갈등을 잘 조정하는 사람이 지도자와 승자 아닌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사과를 잘해서 위기를 기회로 뒤집은 것으로 유명하다. 오바마는 대통령 후보 시절에 행사를 취재하는 여기자한테 ‘스위티(sweetie 예쁜이)’라고 불렀다. 자기 애인을 부를 때나 쓸 애칭을 공적으로 활동 중인 기자한테 붙였으니 성희롱 아닌가.
 
오바마는 다른 도시로 이동하다가 실수를 깨달았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기자에게 전화했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자 메시지를 남겼다. “스위티라고 부른 것을 사과합니다. 저의 나쁜 말버릇입니다. 실수해서 매우 미안합니다. 전화 한번 주세요. 제 홍보팀을 통해 당신에게 보상하겠습니다.” 오바마는 경위 모두를 언론에 발표했다. 위기를 벗어났다.
 
라자르는 역사에서 실패한 사과와 성공한 사과 사례를 연구해 사과의 공식 네 가지를 뽑아냈다. 첫째, 무엇을 잘못했는지 사실관계를 명백하게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은 “제가 뭘 어쨌든 관계없이 사과한다” “아무튼 사과한다”라며 사실관계를 흔히 얼버무린다. 가짜 사과이며 효과가 없다. 둘째, 잘못을 왜 저질렀는지 경위를 밝혀야 한다. 셋째, 참으로 부끄럽다고 후회와 수치심을 적극적으로 밝혀야 한다. 넷째, 보상과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말로만 하면 소용없다. 내가 잘못해 상대한테 피해를 줬으면 피해를 구체적으로 회복해 주어야 한다.
 
그날 군대 부사관 강의에서 이런 내용을 소개했다. 청중 한 사람이 질문했다. “교수님, 사과했다가 자존감이 더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 하죠?” 무슨 뜻인지 즉시 이해하지 못하고 대충 얼버무렸다. 강의를 마친 뒤 곰곰 생각해 봤다. 오바마 대통령처럼 잘 나가는 사람들은 실책을 범해도 사과를 잘하면 되레 점수를 딴다. 라자르 공식대로 실책을 정면으로 인정하고 나서는 게 유리하다.
 
잘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나한테 질문한 분은 이렇게 걱정했을 것 같다. 내가 사과했는데 상대방이 사과를 받아주고 점수를 올려주기는커녕 사과한 사실을 약점으로 삼아 나를 무시하고 밟아버리면 어떻게 하나요? 그분 걱정이 옳았다. 우리 사회에 갑질 문화가 얼마나 심한가. 비정규직이라고 알바라고 아파트 경비라고 나이 어리다고, 나이 먹었다고 무시하지 않나. 부사관은 군대 조직의 중추 전문집단이다. 현실에서는 장교한테 무시당하고 귀한 집 자식인 병사들한테도 큰소리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끼인 존재가 겪는 고충이라고 할까.
 
내 강의가 부족했음을 느낀다. 지면을 통해서라도 그분한테 다시 답변해드리고 싶다. “자신을 함부로 낮추지 마세요.” “자기 값어치를 자기가 지키세요.”
 
박창식 언론인
 
권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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