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변호사비 대납 횡령 혐의 관련 사건의 공소시효가 최단 10년이라 올해 만료될 수 있지만 검찰 수사는 늘어지고 있습니다. 대형 로펌과 재벌 그룹 사이에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거래 형태인 만큼 조현준 회장 사례만 꼬집어 기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게 법조계 관측입니다. 따라서 공소시효를 넘겨 사건 수사 자체가 유야무야 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옵니다.
26일 검찰 관계자는 조현준 회장의 변호사비 회사자금 대납 혐의 관련 경찰이 기소의견 송치했던 사건에 대해 현재 “중앙지검에서 수사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법조계에선 사실상 해당 사건이 다른 사건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묵혀두고 있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효성그룹 측의 대관력으로 검찰의 기소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옵니다.
해당 변호사비 대납 사건은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될 시 특경가법 위반 혐의를 다툴 가능성이 높게 점쳐집니다. 업무상 횡령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는 10년입니다. 하지만 특경가법상 위반 횡령 이득액이 50억원을 넘게 되면 15년까지 공소시효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 즉, 검찰이 조현준 회장 등이 취했을 변호사비 대납 이득액을 어느 규모로 특정하느냐에 따라 공소시효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는 “횡령액이 50억원을 넘으면 특경가법상 공소시효가 15년이 적용될 것”이라며 “해당 사건은 횡령액이 몇십억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횡령액 50억 미만 시 올해 이후 공소시효 끝나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때의 법정형은 특경가법상 3년 이상 유기징역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공소시효는 10년입니다.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때는 특경가법상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소시효는 15년이 됩니다.
경찰은 2019년 12월13일 변호사 선임비 등 개인 소송비용을 회삿돈으로 쓴 혐의로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과 조현준 회장을 기소의견과 함께 검찰에 넘겼습니다. 송치할 당시 경찰은 횡령액을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여러 사건에 걸쳐 효성그룹과 로펌 및 변호사간 법률 계약이 체결된 사례가 많아 어느 사례가 횡령 사건에 해당하는지 액수를 특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검찰이 혐의점이 있다고 보는 사례를 추린다면 횡령액은 공소시효 15년을 넘지 못하는 50억원 밑으로 잡힐 수 있어 사건자체가 기소 없이 묻힐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당초 이 사건은 참여연대가 고발했습니다. 고발장에선 조현준 회장 등이 2013년 10월11일 검찰의 효성그룹 총수일가 조세포탈 등 관련 압수수색 이후 효성 등이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과 집중적으로 법률 계약을 체결했음을 지목했습니다. 즉, 혐의점은 2013년부터 시작합니다. 올해 10년째인 만큼 검찰이 횡령액을 50억원 이상으로 특정하지 못하면 공소시효로 인해 지워지는 사건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건은 2017년 3월 시작된 조현준 회장에 대한 횡령, 배임 관련 검찰 수사 때도 반복됐다는 의혹을 삽니다. 검찰이 횡령사실을 파헤쳐야할 사건이 단일하지 않고 복수 이상인 형태입니다. 해당 기간 총 법률 계약은 400억원대로 추정됐습니다. 이 중 조현준 회장 등 총수일가 개인사건임에도 회삿돈으로 지급한 계약이 금액적으로 어느정도 규모인지 불분명합니다.
만일 검찰이 공소시효를 넘겨 기소 없이 종결한다면 여론 반발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법률계약 비용을 회삿돈으로 손비 계상한 만큼 법인세액 탈루도 이뤄졌을 것이란 혐의점이 있습니다. 국가로서도 효성그룹이 조세포탈로 탈루한 세금을 징수해야할 필요가 존재합니다.
횡령이 발생했다는 가정 하에 효성 회사측면으로서도 상장회사인 만큼 횡령금액을 보전하지 못하면 국민연금을 포함한 다수 주주의 손실로 연결됩니다. 검찰이 기소해 재판에서 횡령액이 확정되면 회사가 손실액을 보전할 방법이 생기지만 기소 자체가 안되면 다툴 여지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법조계 오래된 관행이라 “기소 쉽지 않을 듯”
법조계는 공소시효 만료 사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만큼 횡령 사건의 혐의점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봅니다. 사건 발생 이후 고발 시점까지 상당 시일이 걸리고 계약 관계의 부정을 입증할 단서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이 때문에 검찰 수사가 길어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검찰이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고 있다는 의심스런 시각도 없지 않습니다. 법조계 관계자는 “회삿돈으로 총수일가 개인사건 변호사비를 대납한 것은 업계의 오래된 관행”이라며 “보통 법률 자문 형태로 회사가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총수 개인 사건에서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는 식”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검찰과 로펌, 재벌그룹간의 오래된 거래형태인 만큼 이 문제를 법률상 위반행위라고 규정한다면 관행이 무너지는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조현준 회장이 변호사비를 회삿돈으로 대납했다는 의혹 사례는 2013년부터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가장 많은 수임료를 챙긴 것으로 파악됩니다. 효성그룹은 사내외 이사에 김앤장 법률사무소 출신 인사를 영입하는 등 효성그룹과 대형 로펌과의 유착관계도 포착됩니다. 이러한 법조계에 대한 영향력이 수사 과정에서도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효성그룹은 이에 대해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개별 기업이 답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